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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ESC] 서귀포의 재발견···물오름에서 쇠소깍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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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한라산 밑동 물오름을 베이스캠프 삼아

오름, 숲길, 계곡 지나 바다까지 한나절

하례리 고살리숲길·예기소·쇠소깍 지나면

서귀포 속살인 숲길 거쳐 웅장한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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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 많은 지역에서 보물찾기도 어디부터 찾아갈지 막막하기 마련이다. 제주 서귀포가 그렇다. 올레길, 숲길, 오름, 해변 어디부터 가야 할까. 리 단위 반경에서도 계곡의 기암과 숲길, 한라산 남쪽 전망과 오름, 해변까지 모두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제주 서귀포 남원읍 하례리 일대다. 보물이 다 모여 있다. 기다란 참빗 모양의 하례리는 한라산 남쪽에서 서귀포 앞바다를 잇는다. 지난달 21일 하례리 물오름에서 남쪽으로 고살리숲길, 영천오름·칡오름 사이 협곡을 거쳐 효돈천을 따라 쇠소깍이 있는 바다로 나왔다. 서귀포의 속살은 숲에 있었고, 좁은 숲길을 지났기에 끝에서 만난 바다는 더욱 웅장했다.

한라산 남쪽은 오름 천지다. 그중 물오름은 한라산 밑동에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 위치한 물오름은 반경 2~4㎞ 안에 동쪽으로 이승이오름, 서쪽으로 솔오름, 남쪽으론 영천오름, 칡오름이 몰려 있다. 높이 149m 물오름은 과거 꼭대기에 물이 고여 있어 물오름이라 불렸다. 지금은 물이 없다.

히말라야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있다면, 한라산엔 물오름 베이스캠프가 있다. “물오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 주변은 일주일 내내 걸어도 좋을 오름과 숲길 천지죠.” 오전 10시 물오름에서 만난 장수익 전 하례2리 이장이 말했다. 물오름은 한라산을 바람막이 삼아 겨울에도 따뜻하고, 서귀포 정중앙에 위치해 여행 출발점으로 삼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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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름 탐방로 입구에서 꼭대기까지는 두 개의 길이 나 있다. 편도 500m 안팎 숲길은 지난가을 떨어진 황갈색 낙엽들이 양옆으로 비켜나 길을 드러냈다. 흙길이 반반하고 완만해 쉬엄쉬엄 걸었다. 평지에 가까운 길에선 숲 속 공원에 온 기분마저 든다. 숲길 가장자리에 늘어선 키 큰 삼나무 줄기는 에메랄드빛 이끼에 넓게 뒤덮여 있다. 물기 머금은 포동포동한 이끼는 숲의 왕성한 기운을 내뿜었다. 10~20분을 걸으니 어느덧 꼭대기다. 맑은 날엔 서귀포 남쪽 앞바다 지귀도 섬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탁 트인 전망, 하늘은 뿌옇지만 그 아래 영천오름과 칡오름만은 검은 윤곽이 선명하다. 안개는 때로 풍경을 수묵화로 만든다.

물오름을 내려와 516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2㎞ 내려갔다. 서성로 삼거리 근처 고살리숲길 입구가 보인다. 고살리는 하례리 중간 지점 사시사철 맑은 샘(고살리 샘)이 솟는 마을 이름이었다. 고살리숲길은 고살리 샘까지 2.1㎞ 이어진다. 길가 키 큰 나무들은 가지 끝을 서로 모아 아치 모양 지붕을 만든다. 숲길엔 그늘이 드리웠다. 숲길은 발의 감각이 기억한다. 고살리숲길에선 물기 남은 낙엽을 밟으며 푹신한 감촉을 느끼다가 큰 돌 박힌 길에서 다시 발의 감각이 살아나길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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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30~40㎝ 나무줄기엔 제주도와 전남 신안군에 자생하는 콩짜개난 덩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무릎 높이 돌담 형태인 잣성은 유적이다. 과거 이 지역이 말을 키우던 목장 경계였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숲길 중간 지점을 지나면 ‘속괴’가 있다. 사시사철 물이 고인 깊은 웅덩이다. 웅덩이 옆 큰 바위 위엔 적송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물에 비친 적송과 바위가 장관이다. 속괴를 지나면 태풍 피해 이후 조성한 하천 옆으로 시멘트 포장길이 보인다. 여기선 좁은 샛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가는 길 곳곳 나무 밑동 주변에 ‘한란’이 눈에 띈다. 멸종위기 식물이자 천연기념물 191호인 한란은 주로 제주도에서 자생한다. 헌종 6년(1840년) 윤상도 상소문 배후로 몰려 제주도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가 각별히 아끼며 그림 그린 난초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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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살리숲길 4분의 3을 지날 즈음, 마른 계곡엔 기괴한 풍경이 펼쳐진다. 제주도와 전남 완도에 자생하는 3~5m 조록나무 세 그루가 계곡 돌 틈 사이에 자라고 있다. 조록나무들은 폭우와 급류가 몰아쳐도 더는 밀려날 수 없는 계곡 가장자리에서 괴암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장수익 전 이장은 “서귀포로 9년 동안 유배 온 추사가 이 조록나무의 심정 아니었을까요?” 물었다.

고살리숲길이 끝나는 지점 주변에 고살리 샘이 있다. 그 아래가 영천오름이다. 영천오름과 그 남쪽 칡오름 사이 협곡이 있다. 협곡 들머리에서 5분 걸어가면, ‘예기소’라는 설화 속 명소가 보인다. 숲이 우거진 협곡 한가운데 10~20m 높이 괴암이 2~3m 틈을 두고 벌어져 있다. 그 아래 너르고 마른 계곡은 바위 무더기다. 폭우가 내리면 급류가 바위를 덮고 넓고 깊은 물웅덩이를 만든다. 웅덩이 주변은 고려 19대 명종 때 제주 말을 관리하는 검마관이 서울에서 내려오자 제주 관리들이 잔치를 베푼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괴암 사이에 줄을 매어 줄타기 공연을 하던 한 기생이 줄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하여 예기소라는 이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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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소에서 효돈천을 따라 5㎞ 가면 쇠소깍이다. 효돈마을의 옛 이름 ‘쇠돈’에 있는 소(물웅덩이)의 끝(깍)이란 뜻이다. 한라산 물줄기가 효돈천 끝에서 바다와 만나는 곳이 쇠소깍이다. 오후 3시, 제주 올레길 6코스 시작점인 쇠소깍 앞바다 해변엔 바닷바람 쐬며 거니는 여행객들이 여럿이다. 쇠소깍 나루터에선 전통 나룻배 체험이 한창이다. 여행객 둘이 탄 나룻배 한 척이 나무가 우거진 좁은 물길을 지나 바다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물오름부터 쇠소깍 앞바다까지 5시간, 서귀포 숲길은 바다와 만난다.

글·사진 서귀포(제주)/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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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서귀포 여행 방법

가는 법 물오름(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산10번지)부터 쇠소깍(서귀포시 쇠소깍로 128)까지 여행은 렌터카가 편리하다. 물오름 탐방로에선 한라산 둘레길 버스정류장 주변에 주차할 수 있다. 고살리숲길(하례리 산53-4번지) 입구에선 선덕사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다. 고살리숲길을 다 걸은 뒤, 하례입구 삼거리 516도로 하례환승정류장에서 281번 버스를 타고 1개 정류장 거리 입석동정류장에 내리면, 다시 고살리숲길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고살리숲길은 하례리생태관광마을 누리집(www.ecori.kr)과 전화(064-733-8009)를 통해 2~3일 전 신청하면 해설사와 동행할 수 있다. 예기소는 해설사 동행이 어렵다. 꼭 가고 싶다면, 장수익 전 하례2리 이장(010-4478-3618)에게 문의하면 된다. 쇠소깍은 대형 주차장이 있다. 전통 나룻배 타기 체험(왕복 800m, 약 25분 소요)은 1인당 1만원이다.(064-762-1619) 다른 탑승객이 없을 경우 혼자서는 안전상 탑승할 수 없다.

먹을 것 돈내코 순두부(상효동 1403-3/064-738-9908/일요일 휴무/오전 11시~오후 2시)는 순두부찌개(6000원)를 주문하면 수육과 두부 한 접시도 나온다.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는다. 하효살롱(하효동 967-1/064-732-8181/명절 당일 및 일요일 휴무/오전 11시~오후 6시)은 하효부녀회가 운영하는 제주 한정식 식당. 감귤된장 옥돔구이 한 상이 1만8천원. 하례점빵(하례로 381번길 73/064-767-4545/일요일 휴무/오전 10시~오후 6시)은 하례감귤점빵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제주 전통빵 판매점. 빵 한 개에 1000원 또는 1500원(한라봉 상궤빵). 황금빅버거(하례리 1876-1/064-733-6298/연중무휴/오전 9시~오후 7시)는 황금빅버거 4인용(8조각)이 2만2천원, 2인용(4조각)이 1만2천원.

묵을 곳 물오름 근처 예이츠산장(하례리 1876-1/064-767-3746)이 있다. 남원읍 주변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을 모두 볼 수 있는 리조트는 대명샤인빌리조트(표선면 일주동로 6347-17/1588-4888) 등이 있다.

갈 만한 축제 제21회 서귀포유채꽃 국제걷기대회가 오는 23~24일 서귀포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5㎞, 10㎞, 20㎞ 코스가 있다. 참가비는 개인 1만원, 단체(20명 이상) 8000원, 학생 무료.(064-760-3320)

김선식 기자



서귀포(제주)/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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