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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기자수첩] 삼성스럽지 않았던 삼성전자 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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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한국을 대표하는 정보통신(IT) 기업이 보여준 ‘19세기’식 주주총회. 20일 열린 삼성전자 주총을 지켜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주주들이 마치 아이돌 콘서트 입장을 기다리듯 미세먼지를 마시며 줄을 서고, 전자투표제로 사전에 주총 안건에 대한 주주 의견도 묻지 않고, 의사진행 발언은 "문제없다" 일관하는 모습은 IT기업다운 ‘샤프함’도, 국내 최대 기업 다운 품격도 보이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이날 주총이 끝나자 마자 홈페이지를 통해 ‘삼성전자 주주님들에게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팝업창을 띄웠다. 이날 오전 열린 주총에서 주주들이 최악의 미세먼지 속에서 최대 2시간씩 대기하며 분통을 터뜨린 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즉각 진화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나 투자자들에게 올해 주총은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지난해 5월 삼성전자가 액면분할을 하면서 250만원대였던 주식이 5만원대로 떨어졌다. 그만큼 주주도 늘었다. 삼성전자는 당시 보다 많은 사람이 투자를 할 수 있게 하겠다며 ‘국민주’가 되겠다고 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올해 주총에 지난해 보다 2배 늘어난 800여석의 좌석을 준비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날 주총장을 찾은 주주 1000여명은 3대의 엘리베이터를 나눠타고 올라가 ‘ㄹ’자로 길게 늘어서 주주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시간이 지연되면서 엘리베이터까지도 가지 못한 주주들이 주총장이었던 삼성전자빌딩을 뱅뱅 돌아 길게 줄 서 있어야 했다. 이 때문에 주총이 시작된 오전 9시 정각 주총장에 입장해 있는 주주는 고작 500여명이었다.

삼성전자는 국내 상장사 중 전체 64% 정도(1350개사)가 도입한 전자투표제도 도입하지 않았다. 전자투표제는 주총이 열리기 전 열흘 동안 주주들이 온라인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다.

운영면에서도 눈을 의심할 만한 구식 행보가 이어졌다. 주총 전부터 논란이 됐던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현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안규리 서울대 신장내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문제도 그랬다. 의장을 맡았던 반도체 담당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외이사들의 독립성 문제’를 지적하는 주주에게 "상법상 사외이사 결격 사유가 없다. 현재 교수로서 학문 연구하고 계시기 때문에 독립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사회 내 위원회인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에 있는 박재완 전 장관이 스스로를 셀프 추천한 건 문제 없는가’ 하는 주주 지적에 대해서도 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사추위원장)은 "후보군 결정 절차에는 박 전 장관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법적으로나 절차적으로 문제 없다’는 식으로 주주와의 논쟁을 원천 차단하면 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할 이유는 없다. 주총은 주식회사의 주인인 주주가 이사회의 의사결정, 경영에 대해 통제하고 논쟁할 수 있는 도구 아닌가. 지난 3년간 사외이사로 활동했던 박 전 장관이 얼마나 독립적으로 주주 입장에서 이사회에 임했는지를 설명했다면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안건을 통과시키는 방법도 주주들에게 ‘박수를 쳐 달라’는 것이었다. 박수를 치든 말든 김 부회장은 의사봉을 두드렸다. 회사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우호적인 계열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이미 유효한 수준으로 사전에 의결권 찬성 투표를 했을 것이다. 박경서 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고려대 교수)은 "제3자가 사전 의결권 집계를 검증해 이 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빠른 변화와 유연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주총을 보면 그런 변화는 이 부회장의 바람에 그치고, 삼성전자 내부 문화는 여전히 경직되고 구시대에 머무르는 것 같은 우려가 든다.

장우정 기자(wo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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