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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김명환의 시간여행] [149] '연탄가스 제독 방안' 현상 모집… 당선작 '0', "炭에 인분 가루 섞어라" 등 황당 제안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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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 불면서 연탄가스 사망자가 속출하던 1968년 11월 15일 서울시가 초유의 대책을 발표했다. 무려 1000만원(오늘의 약 6억50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고 연탄가스 제독 방안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경보기 등 예방 장치를 발명한 사람에게는 200만원을 준다고 밝혔다(조선일보 1968년 11월 16일 자).

당시 연탄가스 문제는 비상한 대응책이 요구될 정도로 심각했다. 서울의 연탄가스 중독 사망자는 1965년 138명이던 것이 1968년엔 452명으로 급증했다. "당국이 나서 뭐든 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그래서인지 언론도 현상 모집에 대해 처음엔 "한국의 두뇌가 총궐기하고 총동원됨 직한 일"이라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국가기관 현상 공모 사상 유례가 드문 거액을 내걸었기 때문인지 아마추어 발명가들은 물론이고 초등생, 주부, 80세의 복덕방 할아버지들까지 뛰어들었다. 서울시청엔 전국 방방곡곡에서 아이디어가 홍수처럼 쇄도했다. 하루 평균 70건이 우편 접수되고 30여 명이 직접 찾아와 직원들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산골 노인이 "가스 제독의 묘약을 갖고 왔으니 즉석 실험해 보고 상금을 바로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조선일보

서울시의 ‘연탄가스 제독법 현상 모집’을 크게 보도한 신문 기사(왼쪽·동아일보 1968년 11월 19일 자)와 모집 공고 후 전국에서 온갖 아이디어가 쇄도해 진땀 빼는 공무원 모습(경향신문 1968년 12월 2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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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말에 마감해 4개월 동안 심사한 결과는 참담했다. 2387건에 이른 응모작 중에서 단 한 건의 당선작도, 가작도 건지지 못했다. "태산이 떠나갈 듯 요동치더니 쥐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응모작 중엔 전문가의 진지한 연구 결과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즉흥적이거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내용이었다. 단적으로 "연탄에 소금을 뿌리면 된다"는 제안이 300건을 넘었다(동아일보 1969년 5월 6일 자).

그런 실패를 잊었는지 후임 서울시장은 1970년 9월 25일 연탄가스 제독 방안을 또 현상 모집했다. 당선작 상금은 1회 때의 절반인 500만원으로 내렸다. 두 번째 공모의 응모작 수준은 더 황당무계해 실무자들조차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무를 섞어 끓인 돼지고기 국에 탄을 넣었다가 말려서 연탄을 만들면 된다" "인분 가루를 섞어 연탄을 만들면 가스 새는 곳을 냄새로 금방 알 수 있다"는 내용도 제출됐다. 결국 총 369건의 응모작 중 500만원 발명상 당선작은 없고, 연구부문 장려상 3명만을 뽑는 초라한 결과에 그쳤다. 언론에선 이런 식의 공모가 국민의 사행심만 조장할지 모른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문외한이 현상금에만 눈멀어 발명에 뛰어들었다가 가산을 탕진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탄가스 제독 방안 현상 공모 소동은 한국의 전시 행정이 빚은 대표적 해프닝으로 꼽기에 손색없다. 그런데 그때와 너무나 닮은 아이디어 공모 발표가 들려 귀를 의심하게 한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은 18일 전 국민을 상대로 '미세 먼지를 줄일 아이디어'를 공모한다고 밝혔다. 중지(衆智)를 모아서 할 일과 소수 전문가끼리 할 일을 혼동한 50년 전의 재판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런 사람들 머릿속엔 툭하면 실효성 없는 보여주기를 하려는 DNA가 대물림이라도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갑갑할 뿐이다.

[김명환 前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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