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6 (일)

[마음읽기] 혼미한 시대에 대하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장강명 소설가


미세먼지 농도가 ‘보통’이라기에 자전거를 끌고 한강에 나갔다. 보름 전처럼 이게 이승 풍경인지 저승 풍경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맑지 않고 부옜다. ‘화창한 봄날’이라는 말은 이렇게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건가, 생각하며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속도를 내도 신이 나지 않고, 내가 사는 도시의 우중충한 모습에 오히려 한숨이 나온다.

요즘 신문을 보면 똑같은 기분이 든다. 뭐 하나 시원시원한 기분이 드는 기사가 있느냐 말이다. 아, 물론 언론은 나쁜 뉴스를 좋아하고 사람들은 자기야말로 난세 중의 난세를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 해도 한반도에서 구한말을 살았던 사람은 자기들의 시대가 특별히 안 좋은 시대이며, 모든 상황이 한 번도 보지 못한 파국을 향해 나쁘게 치닫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지 않았을까?

통계 지표만 놓고 보면 최악이라 할 상황은 분명히 아니고, 엉금엉금 사회가 발전한다는 증거도 이것저것 모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단단히 꼬였고, 우리는 길을 잃었다는 느낌에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힌 것 같다. 시대 변화를 못 쫓아가는 중년의 한탄이었으면 좋겠으나, 젊은 세대 역시 마찬가지로 혼란과 무력감을 토로한다.

이 혼미함은 미세먼지처럼, 상당 부분 나라밖에 원인이 있다. 한국의 취업난과 경제양극화, 그로 인한 좌절감은 여러 선진국에서 진행 중인 거대한 중산층 붕괴 현상의 일부다. 기술발달과 자유무역으로 과거 선진국 중산층의 일자리들이 자동화되거나, 제3세계로 넘어간다. 기성세대는 어찌어찌 직장을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자녀들은 기존 경제에 편입되기 어렵다. 사람들은 체념하거나 분노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낯선 개성, 혐오 문화의 발현, 정치적 극단주의의 부상은 모두 한 뿌리에서 왔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중앙일보

마음 읽기 3/20


4차 산업혁명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수요예측과 위치정보기술로 유통물류 혁신을 이뤘을 때 배달기사가 가져가는 몫은 얼마나 늘어날까? 혹시 배달기사의 몫을 없애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목표인 건 아닌가? 공유경제는 틈새시장 이상이 될 수 있을까? 거대 담론의 종말 이후 진보운동들은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나? 많은 운동들이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각각의 부문에서 ‘우리는 이것을 요구한다’고만 외치는 건 아닌가? 그 요구가 다른 요구와 상충될 때에는 목소리를 더 높이는 걸 전략으로 삼고 있진 않은가? 옛 질서는 고장났는데 새 질서는 윤곽이 보이지 않는다.

답이 안 보이는데 문제 해결능력마저 퇴화하는 듯해 혼미함은 더 커진다. 자욱한 미세먼지를 뚫고 어떻게든 자전거 페달을 밟아보려는데, 다리가 점점 마비되는 격이다. 지금 한국 정치판은 갈등관리 기구라기보다,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의 표현을 빌자면, 그냥 ‘개소리’의 향연장 같다. 말하는 이 스스로도 자기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관심이 없다면 그 말은 개소리다. 혹자는 대통령제나 소선거구제를 탓하기도 하는데, 그런 제도와 관련 없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셜미디어도 개소리로 넘쳐나는 건 왜일까. 우리에게 공론의 장이 남아 있긴 한 걸까.

개인의 행복과 내면의 평화는 우리 모두 추구해야 할 바이기는 하되, 그게 이 혼미한 시대의 최종 해답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것은 마치 모든 집과 학교와 사무실에 공기청정기를 보급하면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내가 이해하는 인간은, 제 몸뚱이와 자기 가족과 자기 학교와 자기 회사 안에 갇힐 수 없는 존재다. 그의 좋은 삶은 좋은 거리, 좋은 사회와 함께 실현된다.

‘우리가 혼미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지금 매우 분명하다. 최소한 그 사실을 부정하는 선동가들만큼은 거를 수 있는 지혜를 우리가 놓지 않기를 바란다. 명쾌한 선악의 이분법을 바탕으로 한 해결책을 외치는 이가 있다면, 특히 그가 없애자고 하는 ‘악’이 우리 근처의 특정 개인이나 소수 집단이라면, 십중팔구 선동가다. 취업난이나 미세먼지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앞길이 흐릿해도 포퓰리즘이라는 수렁의 냄새는 미리 맡을 수 있다. 수렁 뒤에는 파시즘이라는 낭떠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오후에 봄비가 온다고 한다. 비 온 뒤 간만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답답하다.

장강명 소설가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