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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사회적 대화 `2년 헛바퀴`…탄력근로·연금·카풀 갈등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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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류하는 사회적 대타협 ◆

매일경제

민주노총 산하 서비스연맹 노조가 19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 앞에서 `노동 개악 저지`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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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화를 주요 정책 과제로 내세우며 출범한 문재인정부가 반환점을 향해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의제를 넘어 전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겠다고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다루는 의제들은 사실상 모든 안건에서 각 사회계층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노동법에 반영해야 하는 시한도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아 우리나라가 FTA 협정문 내 노동조항을 위반한 최초 국가가 될 위기에 처했다. '신(新) 러다이트(Luddite) 운동'으로 주목받았던 카풀·택시 간 분쟁은 타협을 이룬 지 일주일 만에 카풀 기업과 택시운전사들이 모두 반발하며 더 꼬였다.

19일 정부 등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로 삼았던 ILO 핵심협약 비준은 오는 4월 9일까지 성과를 내야 한다. EU는 지난해 말 우리나라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한·EU FTA 조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FTA 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했다. 4월 9일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분쟁 해결 절차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 패널에 회부된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노동인권 문제가 아니고 통상 문제이기 때문에 4월 9일을 넘겨선 안 된다"며 "위반 시 강제력은 없지만 EU가 그냥 넘어갈 가능성은 없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 중국이 한국에 취했던 조치들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는 지난해 7월부터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서 23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지만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시한을 약 보름 앞두고 있음에도 경영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운 뒤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당연히 비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계 요구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지난 2월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에서 합의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안도 경사노위 본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협의 과정에서 배제됐던 여성·청년·비정규직 근로자위원들이 본위원회를 보이콧하며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1호 안건'이었던 탄력근로제 확대안도 최종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로 국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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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발표한 합의안도 거센 반발에 부딪혀 삐걱거리고 있다. 서울시개인택시운송조합은 합의문 발표 바로 다음날인 8일 졸속 합의를 거부한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일주일 뒤엔 카풀 스타트업 3사 대표가 모여 카카오모빌리티의 카풀 영역에서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며 역시 사회적 대타협 무효를 선언했다. 실제로 카풀 영역의 대표성엔 문제가 있다. 특히 합의문에 출퇴근 시간인 오전 7~9시, 오후 6~8시 2시간씩 카풀을 허용한다고 명시하면서 이미 24시간 카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들은 졸지에 불법으로 몰릴 처지다. 극히 일부 당사자끼리 사회적 대타협을 진행하면서 발생한 부작용이다.

또 합의문 내용을 채우는 과정은 '카풀 합의이행 실무기구'가 전담하게 되는데, 법률·제도 개정 등 중요한 사안을 이 기구가 맡게 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마디로 사회적 대타협 합의문엔 내용이 없고, 이 실무기구가 대부분 새로 작업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무기구를 어떻게 구성하고 권한을 어떻게 설정할지 등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 카풀 허용 시간을 법에 명시하기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야당에서는 당과 상관없이 택시에 우호적인 상황이라 국회 통과도 어렵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타협이라고 한다"며 "카풀 타협도 소비자가 희생하고 택시 업계가 기득권을 유지한 것이라 기존 체제를 공고히 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현세대의 노후생활과 직결되는 연금 문제 역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루는 경사노위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연금개혁특위)'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조정 범위다. 연기금 고갈 시점을 뒤로 늦추려면 소득대체율 조정과 더불어 연기금의 재원이 되는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이에 대한 연금개혁특위 구성원들 간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연금개혁특위 종료 시점은 오는 4월 30일이다.

한국노총을 필두로 한 노동계 측은 소득대체율을 최소 45% 선에서 묶어두고, 국민연금 가입자의 보험료율은 현 소득의 9%에서 단계적으로 인상하자고 주장한다. 소위 '조금 더 내도 더 많이 받자'는 의견이다. 반면 경영계는 현안 유지를 주장한다.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4.5%로, 매년 0.5%포인트씩 떨어져 2028년 40%까지 낮춰지도록 돼 있다.

한 연금개혁특위 위원은 "지난 5개월간 서로 이견만 확인한 것 외에는 진전된 게 없다"며 "특위 기간을 3개월 연장할 수 있지만 대부분 위원이 큰 의미가 없다고 비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 역시 "앞으로 서너 차례 회의가 더 남았으나 합의안 도출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노사가 간헐적으로 모여 회의 몇 번 한다고 갈등이 없어질 순 없다"며 "협의체 형태가 아닌 평소에 경제단체와 노조가 수시로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이 마련돼야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 다자간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진호 기자 / 연규욱 기자 /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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