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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레이더L]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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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검찰의 힘을 처음으로 실감한 건 참여정부 때다. 2006년 4월 28일 대검 중수부가 한 대기업 총수를 구속했다. 수사 내내 경제위기론이 우세했지만 구속 이후 뜻밖의 반응이 이어졌다. 저명한 투자자문사가 "(해당 기업의) 경영 투명성이 제고됐다"는 전망을 냈다. 검찰 비판은 일거에 사라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기에 검찰을 장악하지 않으려 했지만 정국 주도권을 잃으면서 검찰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점차 검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2006년 봄 대검 중수부의 위력은 그렇게 집권 3년 차 참여정부의 검찰 개혁 의지가 퇴색되면서 강화된 것이기도 하다.

이후 정권은 바뀌었고 검찰은 견제를 받을 일이 별로 없었다. 2008년 말 대검 중수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검찰은 다시 주목받는다. 그러나 그 절정의 순간에 파탄을 맞았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 10년간 그 원한에 사로잡힌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검찰권을 기꺼이 발현시킨 대가는 가혹했다.

박근혜정부 말기 국정농단 수사는 검찰에 기회였다. 보수 정권 10년의 증오는 최고조에 달했고 검찰은 대립과 갈등의 정치에서 운신의 틈을 찾았다. 증오가 없다면 검찰이 필요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서도 현 정부 탄생에서도 검찰의 기여는 지우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거듭 검찰 개혁을 강변하지만 애초 안 되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잠시도 검찰을 놓아주지 않았다. 검찰에 의존할수록 검찰권은 찬란하게 발현된다.

검찰은 지난 2년간 두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법원장, 삼성의 최고경영자를 구속했다. 지금 서울남부지검에선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딸 채용비리 의혹 수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서울동부지검은 더 돋보인다. 민간인 사찰 의혹과 환경부의 직권남용 의혹 수사에 청와대 인사수석실까지 거론됐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이 10명의 전·현직 법관을 기소한 것은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법원의 영장심사와 사건 배당을 문제 삼았다. 특히 영장을 전담했던 조의연, 성창호 부장판사와 이들의 상급자였던 신광렬 전 수석부장판사를 기소했다. 형사사법의 핵심인 영장심사를 형사법정에 세운 것이다. 영장심사는 검찰 수사의 유일한 견제장치다. 그에 대한 특수 검사들의 불신과 의심은 실로 지독했다. 검찰은 이 사건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할 것이 분명하다. 재판에서 영장심사가 무력해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검찰 개혁은 힘이 빠졌다. 공수처도 수사권 조정도 실기한 것 같다. 이제 검찰을 견제하긴 어려워졌다. 모두가 검찰에 의존하고 검찰권에 매혹된 탓이다. 이것으로 궁극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다만 아무래도 떨쳐내기 어려운 생각이 있다. "우리는 또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전지성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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