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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장세정의 시선]일본의 강제징용 협박, 중국의 미세먼지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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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 문제에 가려진 한·중, 한·일 갈등 심각

일본의 적반하장, 중국의 약속 뒤집기에 당해

치밀한 전략 없으면 '반기문 카드'도 안 먹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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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8년 도쿄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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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과 한·미 동맹 문제보다 소홀히 취급되고는 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한·중 및 한·일 관계도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 강제징용 갈등은 일본과 관련된 역사·인권 외교의 위기를 드러냈다. 미세먼지 갈등은 중국과 엮인 환경재난 외교의 위기를 보여준다. 대일·대중 외교 실패는 이제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대한 문제다. 현 정부가 이런 중차대한 외교 위기를 제대로 감당해낼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 그치지 않고 있다.

먼저 한·일 갈등을 보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10월 일본 기업들의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놓자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서서 강하게 반발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망언 제조기' 아소 다로 부총리가 비자 발급 중단, 송금 중단, 관세 인상 등 구체적 보복 조치 가능성을 언급했다. 사실상 한국을 협박한 외교적 무례였다. 그의 협박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작다지만, 만에 하나 일본이 이런 조치를 강행하면 파장과 혼란이 클 것이다. 취업대란에 빠진 한국 청년들의 일본 취업이 어려워지고, 무비자 일본 여행길이 막히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50만명이었다. 강제징용 갈등을 풀기 위해 지난 14일 한·일 국장급 협의를 했으나 해법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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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미쓰비시 중공업 등 일본 기업들에 강제징용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2018년 10월 30일 한국인 피해자들이 법정 앞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일본 측은 이 판결에 반발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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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가 공공연하게 피해자를 겁박하는 불쾌한 이 상황은 과연 누가 초래했나. 일본의 책임이 근본적이지만, 주객전도와 적반하장 상황을 방치한 한국 외교도 자성해야 한다. 어렵게 만든 일본군 위안부 관련 '화해·치유 재단'을 일방적으로 해산한 아마추어 외교가 일본에 적잖은 빌미를 제공했다. 반일 감정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쉬운 외교' 행태도 문제다.

한·중 관계도 최악 수준이다. 기업들은 철수하고 "되는 일이 없다"는 자조가 나온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중 당시 '혼밥과 홀대'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지난 2년간 대중 외교는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다.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부당한 보복 조치 철회를 촉구한 문 대통령을 2018년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양제츠 국무위원)가 예방했다. 양 특사는 당시 "(사드 보복 해제는) 이른 시일에 구체적 성과를 낼 것이다. 믿어주시기 바란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났지만, 실질적 진전이 없다. 현 정부의 대중 외교 역량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그런데도 특사의 약속이 허언이 됐다고 대국의 옹졸함만 탓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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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오염물질이 유입되면서 전국적으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 가운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은 미세먼지 통계조차 공유하지 않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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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미세먼지 외교는 더 문제다. 인공위성을 통한 관측 자료 등을 보면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반도에 적어도 절반 이상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된다. 하지만 중국이 미세먼지 통계조차 공유하지 않고 한국을 무시하며 오리발을 내밀어도 정부는 실효성이 없다는 한·중 인공강우 공동실험 같은 공허한 제안으로 시간을 허비한다. 객관적 근거와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중국을 집요하게 설득해도 될까 말까 한데 대중 외교에서 촘촘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외교부에 '중국 국(局)'을 신설하면 답이 나올까.

사실 동북아가 유럽연합(EU)처럼 역내의 역사·환경 갈등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배경에는 마땅히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한·중·일 3국의 리더십과 협력 부재 책임이 크다. 그 근저에는 한국의 분단 장애, 중국의 민주주의 장애, 일본의 역사 인식 장애라는 불편한 3대 콤플렉스가 악영향을 주고 있다. 강제징용이나 미세먼지 갈등의 이면에도 이처럼 오랜 세월 켜켜이 누적된 3국 불신이 작동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문제 해결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으니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지 말고 역사적·인문지리적인 측면에서 난제를 풀기 위한 전략을 다듬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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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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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대중 외교의 난도 역시 이래저래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베테랑 외교관들이 쌓은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청와대 일부 인사들이 외교를 주물러왔다. 수십년간 키운 외교관들을 적폐로 몰아서 누구에게 득이 될까.

한국의 외교 자산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중국은 지난해 4월 보아오(博鰲)포럼 이사장으로 발 빠르게 영입해 국제무대에서 활용 중이다. 뒤늦게 청와대가 반 전 총장을 '미세먼지 해결사'로 투입할 예정이다. 현 정부의 외교전선 곳곳에 구멍이 뚫린 마당에 반 박자 늦은 '구원투수 반기문' 카드는 과연 '구세주' 역할을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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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2017년 6월 청와대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중국과의 미세먼지 외교에서 해법을 찾지 못한 문 정부는 반 전 총장을 '구원투수'로 영입할 예정이다.[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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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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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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