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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노래의 탄생]부활 ‘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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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희야 날 좀 바라봐 너는 나를 좋아했잖아/ 너는 비록 싫다고 말해도 나는 너의 마음 알아/ 사랑한다 말하고 떠나면 나의 마음 아파할까봐/ 뒤돌아 울며 싫다고 말하는 너의 모습 너무나 슬퍼.’

올드팬들에게 ‘부활’의 싱어 이승철은 탁월한 보컬로 기억된다. 1986년 1집 앨범을 낸 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이승철은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애당초 ‘부활’은 김태원이 이끌던 ‘디엔드’에서 시작됐다. 김태원은 팀이름을 ‘부활’로 바꾸고 김종서를 보컬로 영입했다. 1985년 김종서를 앞세워 강변가요제에 출전했지만 예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공교롭게도 이승철도 이 대회에 출전했다가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김종서를 내세워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가진 첫 공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첫 앨범 녹음을 앞두고 김종서가 시나위로 빠져나갔고, 베이시스트인 이태윤마저 탈퇴했다. 보컬의 부재는 치명적이었기에 급하게 물색에 나섰다. 그때 김태원의 동네 후배인 이승철이 서울음반에 놀러왔다가 오디션을 본다. 귀공자 스타일의 외모를 가진 그는 즉석에서 김현식의 ‘사랑했어요’와 딥 퍼플의 ‘솔저 오브 포춘’을 불렀다. 멤버들은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을 보는 기분이었다. 베이시스트 자리에 그룹 ‘보헤미안’의 리더 김병찬도 영입했다. 톱가수 민해경(본명 백해경)의 오빠이자 부활의 매니저 백강기는 여동생에게 사정하여 녹음시간을 빌렸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총 20시간. 시간이 없기에 모든 곡을 라이브로 불러서 끝냈다. 타이틀곡인 ‘희야’만 두 번 불렀다. 작사·작곡자인 양홍섭이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여자친구를 위해 만든 ‘희야’는 이승철의 애절한 목소리와 어우러져 순식간에 여성팬들을 불러모았다.

이 앨범으로 부활은 시나위, 백두산과 함께 3대 록밴드 반열에 올랐다. 줄잡아 30만장 이상이 판매됐으며 아직도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꼽힌다. 특히 이승철이 미성으로 부른 여성 취향의 록발라드는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에 록발라드 열풍을 불러오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오광수 경향플러스 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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