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취재일기] 성폭력 '피해자다움'에 두 번 운 신유용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웃는 모습에 "너무 밝은 것 아냐" 공격

이은의 변호사 "삐딱한 시선에 상처"

중앙일보

이은의 변호사(왼쪽)와 신유용씨가 나란히 '셀카'를 찍은 모습. 지난달 서울에서 고소인 조사를 받으러 전주지검 군산지청에 가는 길에 신씨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이은의법률사무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답지 않게 표정이 너무 밝은 것 아냐."

언론에 보도된 성폭력 피해자 신유용(24)씨 모습을 두고 누리꾼 일부는 이같이 공격한다. 유도 선수였던 신씨는 지난해 3월 "고교 시절 유도부 코치 A씨(35)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지난 1월 본인 얼굴과 실명을 언론에 공개하며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신씨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에 여론이 들끓자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다. 그리고 지난 11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씨를 구속기소 했다. 2011년 고등학교 1학년이던 신씨에게 강제로 입맞춤하고 성폭행한 혐의다.

수사는 일단락됐으나 일각에서는 코치 주장대로 "사귄 것 아니냐"는 냉소적 시선이 여전하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날 중앙일보는 이은의(45) 변호사를 인터뷰했다. 기사에는 "힘내세요" 같은 응원 댓글이 많았지만, "관종이냐" "연예인 되고 싶냐" 등 부정적 반응도 적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신씨가 고소인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갈 때마다 동행했다. 기사에 실린 두 사람이 함께 환히 웃는 사진은 이때 신씨가 본인 휴대전화로 찍은 '셀카'다. 이 변호사도 성폭력 피해자다. 삼성전기에 다닐 때 성희롱을 당했다. 회사를 상대로 4년간 법정 다툼 끝에 승소했다. 퇴사 후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이 변호사는 "만 열여섯 살을 갓 넘긴 소녀가 폭행과 폭언을 일삼던 코치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뒤 사랑에 빠졌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신씨가) 세차장에서 일하시는 어머니 마음이 아플까봐 '폭행을 당해도 말할 수 없었다'고 검찰에서 울면서 진술할 때 나도 함께 울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 여성은 어둡고 소극적이다는 발상은 고정 관념"이라며 "'피해자는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변호사도 본인 페이스북에 '피해자다움'을 지적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누군가는 피해자다움을 말하며 (밝은 표정에) 삐딱한 시선을 던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피해자의 해맑았던 시절의 기록을 보며 그 시절에 드리워졌던 얼룩에 더 화가 났고, 그럼에도 밝은 지금을 함께하며 안도했다."

이 변호사는 "더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커지지 않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신씨가 재판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길 바라는 마음도 표현했다. 기자도 같은 마음이다.

김준희 내셔널팀 기자

중앙일보

김준희 내셔널팀 기자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