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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아프리카서 벌어지는 21세기 新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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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192] "할머니의 다리가 아프고 부풀어 올랐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다리가 아픈 게 내 책임이라고, 내가 마녀여서 그렇다고 말했어요."

나이지리아 동남부 칼라바 교외 렘나 쓰레기장에서 살고 있는 열네 살 소년 갓블레스. 가족들이 교회로 그를 데리고 가자 목사는 그가 마녀(witch)라고 선언했다. 친척들은 즉시 갓블레스를 집에서 내쫓았다. 갓블레스가 떠나지 않자 이모는 달궈진 칼로 그의 허벅지를 지졌다. 렘나 쓰레기장에는 갓블레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녀로 몰려 거리로 쫓겨난 '스콜롬보'(거리의 아이)가 수백 명이나 살고 있다고 지난해 11월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마녀사냥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그것이 완전히 사라져 과거의 전유물이 됐다는 것이다. 마법이나 주술에 대한 날조된 주장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역사책에만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로 느껴진다. 실제 오늘날 '마녀사냥'은 중세 마녀사냥의 진원지인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에서 주로 무고한 사람을 모함한다는 뜻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마녀사냥 하지 말라"고 종종 맞서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교과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마녀사냥이 행해지고 있는 곳이 있다. 갓블레스 사례가 넘치는 나이지리아뿐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에 위치한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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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에게 마녀로 몰려 쫓겨난 나이지리아 아이들 /사진=세이프차일드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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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희생자는 여성, 고아, 장애인, 알비노(선천적 색소 결핍증에 걸린 사람) 등 아이들이다.

현재 아프리카 당국은 마녀사냥 피해자를 구제하기는커녕 피해 상황을 별도로 집계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피해 수준을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2010년 유니세프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에만 2만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마녀로 몰려 길거리를 떠돌고 있다고 발표했다.

마녀는 영어의 'witch'를 번역한 말이다. 하지만 여성만 마녀사냥의 피해자가 됐던 것은 아니다. 중세 마녀사냥 희생자 중 80~90%가 여성이었지만 남자가 희생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 아프리카에서도 아이들의 경우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녀사냥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그것이 미신과 낮은 교육수준에서 비롯됐다는 관념이다.

유럽에서 14세기 말부터 18세기까지 유행하며 최소 4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세 마녀사냥은 오랫동안 역사가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지난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이 가톨릭과 개신교 간 종교 갈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미국 버지니아 조지메이슨대학교의 피터 리슨과 제이컵 러스가 재작년 발표한 연구 결과로 이들은 1300년부터 1850년까지 중세 유럽의 마녀재판 8만건과 기독교 종파 간 전투 400여 개의 시기와 장소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이들 간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1517년 독일의 루터 목사가 개진한 '95개조 의견서'를 계기로 종교개혁 움직임이 확산되자 마녀재판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전쟁이 극에 달했던 1555년과 1650년 사이에 가장 성행했다.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 간 분쟁이 치열했던 독일과 스위스에서 마녀재판이 가장 빈번하게 벌어졌으며 처형된 사람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구교와 신교 간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을 치른 끝에 1648년 평화조약이 체결되면서 마녀사냥은 서서히 줄어든다.

피터 리슨과 제이컵 러스는 마녀사냥이 가톨릭과 개신교 간 개종 경쟁에서 더 많은 신도를 확보하기 위한 홍보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결론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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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리슨과 제이콥 러스가 분석한 중세 유럽의 마녀재판 /사진=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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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프리카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 종교분쟁이 극심한 지역에서 마녀사냥이 특히 심각하다. 나이지리아는 남부의 기독교, 북부의 이슬람교로 양분돼 종종 종교를 둘러싼 폭력사태가 발생한다. 인구의 90%가 기독교도인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납치와 살인 등 폭력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공포심을 활용해 종교를 선전하는 것도 중세 유럽과 판박이다. 실제로 나이지리아 기독교 분파인 펜테코스트파(극단주의 기독교 분파) 전도사들은 아동 주술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제안하며 신도들을 전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발 전문가들은 아프리카의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국가의 권한이 강해진다면 마녀사냥이 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유럽에 비추어 볼 때 종교지도자들이 마녀재판을 이용하기 시작하면 막기 어렵다. 유럽의 마녀재판은 종교전쟁이 끝난 뒤 한 세기가 지나서야 완전히 사라졌다.

[문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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