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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Tech & BIZ] 늙은 대륙 유럽의 기술 혁신… '100살 유니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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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의 등장을 알리는 뉴스가 많지 않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유럽은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회사, 제약 산업의 중심지지만 미국과 중국보다 디지털화에 뒤처져 있다"며 "유럽 기업은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재구성하는 어려운 작업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늙은 대륙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 숙련된 노동력, 유기적인 산학연(산업계·학계·연구) 공조를 바탕으로 옛 산업의 진화와 새 산업의 탄생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정보 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5일 기준 유럽의 유니콘은 37개다. 지난해에만 새롭게 14개 스타트업이 10억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나라별로는 영국이 16개로 가장 많았고 독일(9개)이 그다음이었다. 프랑스와 스위스가 각 3개였다.

◇100살짜리 유니콘의 등장

익숙한 비즈니스를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유럽의 한 경영자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쉰 살 먹은 이라고 생각해보라"며 "어느 날 갑자기 가게가 바뀌고, 인터넷 마케팅 등을 배워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럽의 많은 오래된 기업이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

독일의 '오토복 헬스케어(Ottobock Healthcare)'는 올해로 만 100살 된 '가장 오래된 유니콘'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였던 1919년 의수(義手)·의족(義足) 제작 기술자 오토복이 베를린에서 퇴역 군인에게 보조기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고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벤처캐피털 EQT가 회사 가치를 31억5000만유로(약 4조원)로 평가하면서 뒤늦게 '유니콘' 자리에 올랐다. 오토복은 연간 2000만유로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장수의 비결은 새로운 기술과 소재를 끊임없이 적용한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카본 등 고성능 소재, 전자 제어 기술 등을 보조기에 접목하고, 외골격 로봇(exoskeleton robot·몸에 착용해 사람의 동작을 보조하는 기계장치) 등으로 사업 분야를 넓히고 있다.

조선비즈

그래픽=김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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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제약 분야에서 유니콘이 많이 나오고 있다. 기업 가치 상위 20개 유니콘 중 5개가 제약·헬스케어·바이오 업종이었다. 영국에 위치한 '버네벌런트.ai(benevolent.ai)'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신약 개발에 접목한 회사다. 임상시험과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인공지능이 논문 수백만건을 분석하는 식이다. 이미 루게릭병 치료제 2종을 찾아내 '신약 개발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줄여줄 수 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전까지는 제약사가 동물실험 전 단계까지 신약 후보 물질을 찾는 데 평균 4.5년이 걸렸다.




배달업, 온라인 상거래 등은 한국에서는 흔하지만 유럽에서는 신(新)비즈니스로 꼽힌다. 배달업은 그간 인건비가 비싼 유럽에서 엄두를 내기 어려운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배달 천국'인 한국과 다른 부분이다. 영국의 음식 배달 앱 딜리버루(Deliveroo)는 '배달 불가'라는 유럽인의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음식점·배달원·고객의 위치를 분석해 배달시간을 최적화한 점이 성공 비결이다. 딜리버루는 "머신러닝 등을 활용해 배달 시간을 20% 정도 줄였다"며 "배달 시간이 줄어든 결과 배달원도 시간당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독일의 '아우토 1(Auto 1)'은 온라인에서 중고차 거래를 중개한다. 연간 거래 차량 수가 42만대에 달한다. 중고차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정보 비대칭성'을 객관적인 평가와 온라인 공개로 줄인 것이 특징이다. 아우토1 소속 전문가가 중고차의 가치를 감정하고 이에 대해 보증한다.

◇기존 산업과 공존하는 유니콘

지난해 유니콘에 추가된 '택시파이(taxify)'는 에스토니아에서 출발한 승차 네트워크 서비스다. 창업자 마르쿠스 빌리그가 고교 시절인 2013년 만들었다. 당시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는 25개 택시 회사가 제각기 콜센터를 운영해 택시를 부르기가 어려웠다. '택시를 플랫폼 하나에 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택시파이는 현재 유럽·아프리카·중동·북미 등 전 세계 28개국 50개 도시에 진출했다.

택시파이는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신용카드 결제만 가능한 우버와 달리 택시파이는 현금 결제가 가능하다.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는 아직 신용카드 결제가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다. 공유 차량뿐 아니라 택시, 오토바이 택시도 부를 수 있다. 수수료율은 15%로 우버(25%)에 비해 크게 낮다.

프랑스의 카풀 서비스 유니콘 '블라블라카(BlaBlaCar)'는 기존 산업과 갈등을 빚을 때 신규 사업자가 택할 현명한 선택을 보여준 사례다. 유료 카풀 서비스는 택시·버스업계로서는 막아야 할 경쟁자다. 블라블라카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장거리 서비스를 위주로 해 택시업계와의 마찰을 줄였다. 여기에 연료비·거리에 따라 가격 상한을 둬서 블라블라카 운전자가 과도한 이익을 챙기지 못하게 했다. 현재 22개국에서 7000만명이 해당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양모듬 기자(modysse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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