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노인연령 기준 수십개…그때 그때 달라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1일 대법원이 육체노동자의 가동 연한(사람이 일을 해서 소득이 발생할 수 있는 최후 연령)을 60세가 아니라 65세로 보는 게 맞는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정년 연장과 노인 기준 변경 논의가 재점화됐다. 산업화로 정년 개념이 생기면서 경제활동인구와 은퇴계층이 이원화된 데 이어 의료기술 발달로 평균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노인 잣대를 둘러싼 기준은 그야말로 '카오스(chaos·혼돈)' 형국이다. 매일경제는 이런 상황을 자세히 짚어보기 위해 국내 산업 현장과 정책당국, 보험시장 등 각 분야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연령 기준(만 나이 기준)을 살펴봤다.

안병직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근대화 이전 농업사회에서는 은퇴가 없으니 노인을 별도로 분류해 다른 집단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19세기 이후 직업 정년이 생기고 복지제도가 발달하면서부터 노인 개념이 본격화됐다"며 "노인을 분류하는 것은 태생부터 굉장히 인위적인 행위로, 경제·사회적 필요성에 따라 기준이 민감하게 조정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대법원이 육체노동자 가동 연한을 65세로 판단한 것이 중대한 변곡점을 찍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근로자가 일하는 사기업·공기업에서 정년은 법정 정년을 규정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60세다. 일을 마치면 젊을 때 벌어서 모아둔 돈으로 국가가 주는 게 연금이다. 문제는 연금 지급 시기가 정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당장 대표적 노후연금인 국민연금은 62세부터 지급된다. 2년간 '소득 공백'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 같은 공백기간은 2033년까지 점진적으로 5년이나 벌어진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점차 65세로 상향되기 때문이다. 저소득 노인에게 별도로 주는 기초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은 65세다.

반면 이른바 '역(逆)모기지'라고 불리는 주택연금은 60세(부부 중 연장자 기준)부터 가입할 수 있다. 노인 연령 기준이 천차만별이기는 주택분양과 각종 보건·복지 등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인과 청장년을 가르는 기준이 분야별로 다른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분야 안에서도 제각각이라는 얘기다.

가령 민간분양 아파트 청약 자격 역시 60세와 65세라는 두 가지 잣대가 혼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동일한 가구를 이루는 구성원 전원이 무주택자인 가구주에게 유리한 청약 기회를 제공하는데 자녀와 함께 사는 60세 이상 노인이 보유한 주택은 무주택 가구로 본다.

반면 노부모를 부양하는 청장년 가장에게 부여되는 특별공급 혜택에서 노부모 기준은 '65세 이상'으로 더 엄격하다. 황윤언 국토교통부 주택기금과장은 "직계존속이 주택을 보유한 경우에도 무주택자로 인정받는 연령을 60세 이상으로 정한 것은 자녀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라며 "이때 자녀 연령이 대략 30세가 돼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분양 노부모 부양자에 대한 특별공급에서는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일반적 노령 기준인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전했다. 장기요양보험 신청 대상이나 임플란트 시술 건강보험 적용 대상은 65세 이상이다. 노인 임플란트 건강보험 혜택은 당초 재원 부족을 이유로 75세 이상으로 대상을 한정했다가 점진적으로 재원이 확보되면서 65세로 낮췄다.

반면 민간보험사가 판매하는 치매간병보험 가입 가능 연령 한도는 보험사에 따라 70세나 75세로 다르다. 배준성 KB손해보험 장기상품부장은 "각종 연구 결과와 자료를 바탕으로 70세를 넘어서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급속도로 올라간다는 것을 감안한 결과"라며 "가입 가능 연령 기준을 이 이상으로 높이면 그만큼 보험사 입장에서 위험도가 올라가고, 보험료율도 비싸져 상품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각종 노인복지 제도 역시 기준이 다르다. 고용노동부나 지자체 차원의 노인 일자리 사업 지원 대상 연령은 60세인 반면 지하철 무임승차 대상은 65세고 이를 70세 이상으로 늘리자는 논의가 반복돼 왔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역시 65세 이상이다.

직업별 정년 유형 역시 수명이나 인구 추계에 기반하기보다 직업의 '격(格)'에 따라 상향 규정돼 있는 편이다. 가령 유치원 교사나 초·중·고등학교 교사의 정년은 일반 직장인보다 2년 늦은 62세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 교수는 65세로 정년이 더 길다. 검사의 정년은 63세인 반면 판사는 65세다.

이처럼 대부분 일터에서 60~65세 정년을 규정하고 있지만 규정과 인식, 희망은 모두 동떨어져 있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서면서 노인 기준을 더 높여야 하고, 현실에서 실질적인 은퇴 연령은 50대 초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서울시가 지난달 발표한 '2018 서울시 노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서울시민 3034명이 생각하는 노인 기준 연령은 평균 72.5세로 나타났다. 노인복지법의 노인 기준인 65세보다 7.5세 높은 연령이다. 지난해 잡코리아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의 체감 정년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사이에서 맴돌았다. 공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들이 체감하고 있는 퇴직 연령은 평균 53.1세로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대기업(51.3세)과 중소기업(50.8세), 외국계 기업(49.5세)은 50세 전후에 머물렀다.

육체노동자 가동 연한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육체노동자가 아닌 다른 직업군에 대한 가동 연한 논의나 후속 판결도 주목된다. 지난 판결에 따르면 축구선수(35세)나 프로야구 선수(40세), 잠수부(50세)처럼 상당한 체력 조건을 필요로 하는 직업군의 가동 연한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반면 소설가나 의사, 변호사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전문직군 가동 연한은 65~70세로 높았다. 4차 산업혁명 본격화에 따른 직업군 다변화로 이 같은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정석우 기자 / 문재용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