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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학교폭력 대책은 현장을 바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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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바뀌지 않아 기존대로 처리… 담임종결 가능한 사안도 학폭위로 떠넘겨



경향신문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8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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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은 스펙트럼이 넓다. 1000명의 아이가 있다면 1000가지의 학교폭력이 존재한다. 이를 처리하는 교사의 능력과 태도 역시 교사의 수만큼 다양하다. 당연히 학교마다 판단하는 ‘경미한 학교폭력’의 정도도 다르다.

학폭위로 가지 않는 방안도 마련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서 친구에게 “미친 XX야”라고 욕설을 한 가해학생에게 학교는 ‘서면사과’ 및 ‘교내봉사’ 처분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미친 XX야”라는 말을 한 가해학생에게 ‘조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다른 사례도 있다. 지속적으로 소위 ‘어깨빵·몸빵(몸을 부딪히는 행동)’을 하는 중학생 가해자에 대해 학교는 전학처분을 내렸다. 반면 1년 넘게 피해학생에게 비슷한 행동을 했던 중학생 가해자에 대해 학교는 ‘서면사과’하도록 하고, 피해학생에게 심리상담을 권고했다.

어느 학교의 판단이 옳았고, 어느 학교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의 양상을 객관적 잣대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담임교사와 반 아이들만 알 수 있는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사이의 ‘배경’도 존재한다.

경기도의 한 20년차 중학교 교사의 말이다.

“한 사안을 놓고 보자면 ‘A라는 학생이 B라는 학생을 주먹으로 얼굴과 몸통을 2대 가격했다’로 정리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담임교사가 지켜봤을 때 A라는 아이는 평소 B라는 아이에게 놀림을 받아왔고, 교실에서도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그러면 이 사안을 단순히 A가 가해자이고 B가 피해자라고 분류한 뒤 평가할 수 있을까. 애초 폭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사안들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데 이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처벌하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보나.”

교육부는 지난 1월 30일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통해 확정된 학교폭력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약 80일간 교사와 학부모, 학생, 학계 전문가 및 법률가 등 30명의 참여단이 토론을 벌이고, 설문조사를 반영한 결과다.

기본 골자는 경미한 학교폭력은 생활기록부 기재를 한 차례 미루고, 다만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유예했던 기록까지 기재하고 가중처벌한다는 것이다. 즉 교내선도형 조치인 1호(서면사과), 2호(접근금지), 3호(교내봉사)에 해당하는 학교폭력이 한 차례 발생할 경우 생활기록부에는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미한 폭력이라도 반복해서 벌어지면 유예했던 사안까지 포함해 기록하고, 가해학생은 가중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 학교 자체 해결제도를 도입, 학교가 판단했을 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지 않아도 될 사안은 학폭위까지 가지 않는 방안도 마련됐다. 다만 이때는 피해학생 및 보호자가 학폭위를 열지 않는 것에 동의하고 문서로 그 기록을 남겨야 한다. 교육부는 단서조항으로 2주 미만의 신체·정신상의 피해 및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복구된 경우, 지속적 사안이 아닌 경우, 보복행위가 아닌 경우에만 학폭위로 넘기지 않는 것으로 한정했다. 기존의 ‘담임종결제·학교장종결제’를 보다 강력하게 보장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교육부의 발표가 나온 지 20여일이 지난 지금 학교현장은 달라지고 있을까. 일선 교사들은 “지침은 ‘앞으로 하겠다’는 계획일 뿐 법이 바뀌지 않는 한 학교는 기존 방식대로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생활안전부장을 2년째 맡고 있는 한 교사는 “법이 바뀌지 않았는데 교육부에서 아무리 발표를 한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했다. 또 학폭위에 신고하고 절차를 밟는 게 ‘담임종결’보다 교사의 책임을 덜 수 있다고도 했다.

교육부 지침은 교사 보호막 못돼

학교폭력에 대한 규정과 그 처벌기준은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 발표안에 따른 국회의 개정법률안 발의 등 적극적 움직임은 여전히 없다. 교사들은 “교육청에서 적극적으로 담임종결 등을 유도하지 않는 한 교사들은 기존 방식대로 사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침이 교사들의 보호막이 돼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교사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불러 화해를 유도하고, 학부모로부터 학폭위로 가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받더라도 그 확인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 확인서에 서명한 뒤에도 “생각할수록 괘씸해서 학폭위로 가야겠다”고 하면 학교는 학폭위를 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 역시 “선생님이 강제로 피해학생의 신고를 막았다”는 등의 이유로 고소당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교사와 학교가 교육부의 발표와 엇박자를 보이는 이유는 교육부 지침은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현장에서는 법 개정 없는 매뉴얼에는 따르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문제는 학부모 모두가 강력하게 학폭위로 가지 않겠다는 의견을 밝혀 담임종결로 처리가 가능한 사안에까지 교사가 책임을 학폭위로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사건은 2017년 7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중학교에서 ㄱ군은 이날 자신의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ㄴ군이 분무기로 뿌린 물에 맞았다. ㄱ군이 “하지 마라”고 했지만 ㄴ군은 오히려 “네 엄마 XX”, “엄마가 없어서 가정교육을 그따위로 받았다”고 놀렸다. ㄱ군은 ㄴ군을 향해 도덕책을 던졌다. 책은 ㄴ군의 손등에 맞았다. ㄴ군은 욕설을 하며 ㄱ군의 뺨을 때렸다. 둘의 싸움은 학년부장교사에게도 보고가 됐다. 두 아이의 엄마는 싸움 당일 담임교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이들이 서로 화해하는 선에서 더는 문제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학폭위로 가지 않겠다는 의사도 전달했다. 담임교사는 13일이 돼서야 두 아이를 불러 화해하도록 했다. 두 아이의 부모 역시 다음날 학교를 찾아 ‘두 아이가 화해했으므로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는 내용의 담임종결 확인서에 서명했다.

문제는 담임종결서에 서명한 뒤에 벌어졌다.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알리지 않고 학폭위에 해당 사안을 신고했던 것이다. 학폭위가 열리기 전 우편물을 통한 통지서 발송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ㄱ군 집으로 우송된 등기우편은 우편물을 수령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나 받은 사람이 없었다. 우편물 수령일지에 따르면 수령인은 ‘ㄱ군’으로 돼 있다. 그러나 당시 ㄱ군은 학교에 등교한 상태였다. ㄴ군 집으로 발송된 등기우편은 수령인이 없어 반송됐다. 결과적으로 두 아이 모두 학폭위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학폭위가 진행된 셈이었다. 학폭위는 7월 17일 열렸다. ㄱ군은 당시 예전부터 신청했던 체험학습으로 등교하지 않은 상태였다.

두 아이 모두 가해자 자격이었다. 그러나 양측 보호자 누구도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폭위는 열렸고, ㄴ군에게는 1호(서면사과) 처분이, ㄱ군에게는 1·3호(서면사과·사회봉사) 처분이 내려졌다. 담임교사는 ㄱ군의 학교폭력 가해사항으로 ‘ㄴ군을 10대 때렸다’고 기재했다. ㄱ군이 ㄴ군을 10대 때렸다는 진술은 반 아이들에게 받은 진술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ㄴ군 역시 “10대를 맞았다”고 주장한 적이 없었다. 담임교사가 수기로 ‘10대’라고 적어 제출한 게 판단의 근거가 됐다.

사건의 전말은 ㄱ군의 부모가 재심을 신청하면서 드러났다. 재심 전 ㄱ군의 부모와 ㄴ군의 부모가 만나 각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담임교사가 임의로 학폭위를 개최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담임이 제시한 학폭위 회부 사유는 ‘ㄴ군 부모의 요구’였다. ㄴ군 부모는 학폭위 개최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두 아이가 처음 화해한 다음날 부모들이 서명한 담임종결 확인서가 학폭위 불참확인서로 둔갑해 있었다.

회의록에 기재된 기록의 일부다.

○위원 담임종결 확인서를 작성하였는데 담임종결이 된 건가요?

담당교원 아닙니다. (중략) 학생 간 사과의사가 없어 다음날인 7월 7일 금요일 학교폭력으로 접수하였습니다. (중략) 학생 간 사과는 사안 발생 후 일주일 뒤인 7월 13일 목요일에 이루어졌으며, 담임종결확인서는 7월 14일 금요일 일과 이후에 작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안처리의 절차상 이미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된 사안이기 때문에 위원님들께서는 양측 학부모의 서면진술서와 담임종결에 대한 내용을 참고자료로 활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위원 양측 학부모님께서도 인지하고 계신가요?

담당교원 네 담임선생님께서 작성하시면서 이미 이 사안은 학폭위에서 논의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셨고, 작성하는 담임종결 확인서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참고자료로 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하시어 양측 학부모님들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이정엽 행정사는 “통상의 경우는 학부모들이 학폭위에 참석해 의견진술을 하지만 ‘참석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서면으로 제출하면 불참한 채로 학폭위가 진행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담임종결 확인서가 불참의사를 밝히는 증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두 부모가 서명한 담임종결 확인서에는 ‘①학폭위 제소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었다.

결국 싸움의 당사자들도 모르게 몰래 개최된 학폭위 결과는 재심에서 뒤집혔다.

당사자 화해해도 담임이 학폭위에 신고

도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는 “학교 측이 ㄱ군에게 내린 처분을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위원회는 “피청구인(학교)은 통지서를 우편발송하면서 청구인(ㄱ군 부모)이 수령한 것을 확인하지 못한 점, 관련 법령은 적정한 의견진술의 기회를 보장하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피청구인은 의견진술의 기회를 청구인에게 미리 설명하지 않은 점, 청구인이 체험학습기간 중이어서 학폭위에 참석하기 어려웠음을 충분히 인지하였음에도 체험학습기간 중 학폭위를 개최해 처분을 내린 점 등을 고려할 때 사건 처분을 취소할 정도의 절차상 하자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학교는 두 아이에 대해 최종적으로 ‘조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두 학생은 현재 3학년이다. 한 아이는 해당 사건이 발생한 직후 인근 중학교로 전학을 갔고, 나머지 아이는 수행평가나 시험 등 일정이 있을 때만 등교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전학을 가지 않은 아이의 부모는 아직도 학교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당시 담임이었던 교사는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학교 관계자는 지난 2월 20일 <주간경향>과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사안은 학교폭력예방법상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별도로 말씀드릴 게 없다”면서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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