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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줄잇는 통상임금 소송, 근본원인은 '복잡한 임금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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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the L] 기업마다 임금구조 상이, 같은 이름의 수당도 통상임금성 인정여부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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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지부장이 22일 오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아차 근로자 2만7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달라는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의 주장에 대해 이를 인정했으나, 중식비 등 원심에서 인정한 일부는 제외했다. / 사진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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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가 통상임금 소송의 1,2심에서 잇따라 패소했다. 1심에서 기아차가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추가 수당은 4200억여원에 달했지만 1심 판결 후 1년6개월 가량 지난 현시점에서의 지출부담은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최고 50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기아차 뿐 아니라 다수 기업에서 근로자들이 통상임금 상향조정을 통한 추가 퇴직금·수당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줄줄이 패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상임금 소송이 잇따라 제기되는 것은 물론 피고인 기업들이 패소하는 것은 임금구조를 단순화시키지 못한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용 절감 등 다양한 목적으로 임금구조를 복잡화시켰지만 노동규제 강화추세로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후폭풍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상임금은 시급·일급·월급 등 그 명칭과 무관하게, 근로자들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노동의 대가로 받는 금액을 일컫는 법적 용어다. 통상임금은 퇴직금뿐 아니라 해고예고수당, 휴업수당,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등 각종 수당의 기준치로 활용된다.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의 경우 사용하지 않은 날짜에 해당하는 만큼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거나, 휴일근로 시 통상임금의 150%에서 200%에 해당하는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등 규정이 그것이다. 통상임금이 늘어날수록 기업은 그만큼 현금유출 부담이 커진다. 통상임금에 어떤 항목을 넣을지 여부를 두고 노사 양측이 갈등하고 소송까지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아차 사건에서는 통상임금에 기본급 외에 어떤 수당을 더 통상임금에 포함할 것인지가 문제가 됐다. 근로자들은 상여금과 일비, 점심식사 비용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통상임금을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근로자 측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종전에는 기아차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던 상여금 뿐 아니라 직급·직책에 따른 수당이나 복지수당, 근속수당 등 각종 통상수당, 자격수당과 판매지원수당 등 각종 수당 등을 대거 포함시켰다. 이를 통해 2심까지 기아차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한 원금만 3125억원에 달한다.

당사자도 다 세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임금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기업의 비용절감 목적 때문이었다. 법무법인 바른의 박윤정 변호사는 "과거 대법원 판결이나 관행 등을 이유로 퇴직금 부채부담 경감, 세제상 비용인정 항목으로의 활용 등 다양한 목적에서 기업들이 임금구조를 복잡하게 만들려는 유인이 있었다"며 "노동규제 강화가 현실화하면서 그간 관행으로 치부돼 왔던 근로기준법상 강행규범 위반사항들이 법원 판결을 통해 강제적으로 조정되는 과정에서 진통이 잇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1990년 2월 대법원은 유조차 운전기사들이 상여금을 포함해 통상임금을 재산정해서 추가로 연장·휴일근로 수당을 지급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1개월을 넘는 기간마다 정기 또는 임시로 기업의 경영실적이나 근로자의 근무성적 등을 고려해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의 산정기초가 되는 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후 22년이라는 세월 동안 '상여금≠통상임금'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유지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진행된 노동유연화는 기업들로 하여금 통상임금에 산입되지 않는 각종 수당을 무수히 고안해 내도록 부채질했다. 그때만 해도 이 같은 관행은 문제가 안 됐다. 대법원이 기준을 정해줬던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변화 등을 통해 상여금 등 기업이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반영해 근로자에게 더욱 높은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점차 커졌다. 2012년 3월 금아리무진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 이르러서야 대법원은 상여금이 정기·일률·고정적으로 지급돼 왔다는 점이 인정되면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같은 해 12월에는 소위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노사 양측이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넣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강행규범에 위반돼 무효"라고 판단했다(다만 갑을오토텍 사건에서는 노조의 추가임금 청구가 회사에 예측하지 못한 부담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신의성실의 원칙 위반)로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다).

KB증권이 2017년 8월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 1심 판결을 즈음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아차 외에도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강원랜드, 대한항공 등 다수 기업에서 잇따라 통상임금 소송에 따른 진통을 겪었다. 일부에서는 근로자들의 추가수당 청구가 신의칙 위반이라는 이유로 기업 측이 승소했으나 기아차, 만도, 한국GM 등의 경우 근로자가 이겼다.

다행히 통상임금 소송에 따른 진통은 점차 잦아드는 모습이다.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대법원도 조금씩 구체화한 기준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8일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인천 시영운수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근로자 요구가 신의칙 위반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웠다. 근로자들의 청구액이 기업의 자산현황이나 이익창출능력에 비해 과도하지 않으면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요구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급심이 아닌 대법원 차원에서 재무상태·이익창출능력 등을 기준을 판시한 것은 이번 시영운수 판결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통상임금 관련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측을 주로 대리해 온 한 노무사는 "기업마다 고용형태는 물론 임금구조가 제각각이라 한 재판에서 특정 수당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됐다고 해서 다른 기업의 같은 명칭의 수당이 반드시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노사합의를 통해 복잡한 임금구조를 단순화시켜야 하지만 수십년간 관행을 한꺼번에 고치기가 극히 어렵다. 결국 법원에 의한 강제적 조정에 당분간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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