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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이철민의 뉴스 저격] '미국의 플랜'대로 30년, 베트남의 대성공을 김정은 보고 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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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일 미북 정상회담, 베트남 개혁·개방 모델에 눈길 갈 수밖에 없는데…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미·북 정상 회담을 앞두고 지난 30년간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룬 '베트남식(式)' 개혁·개방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스스로 작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판문점에서 회담하며 베트남 모델 채택에 관심을 보였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작년 7월 하노이에서 김정은을 향해 "이 기적이 당신 것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은에게 '공산당 일당(一黨) 독재'를 유지하면서도 30년간 연평균 6.7% 성장한 베트남 모델은 결과만 보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아시아에서 중국·인도 다음으로 높고, 같은 기간 베트남의 1인당 GDP는 거의 5배가 뛰었다. 1992년 인구의 절반이 넘었던 빈곤층(1일 소득 1.9달러 이하)은 이제 2%대로 떨어졌다.

베트남은 1986년 12월 제6차 공산당 대회에서 '쇄신(刷新)'이라는 뜻의 '도이머이'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했다. 당시 베트남 상황은 절박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은 끝났지만, 미국과 서방은 베트남을 국제 경제 질서에서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베트남은 또 1978년과 1979년 캄보디아, 중국과 잇따라 전쟁하면서 경제는 파탄 났다. 1988년에도 300만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500만명이 영양실조 상태였다. 게다가 재정의 60%까지 지원하던 소련이 쇠락하면서 베트남은 현대사에서 최악의 암흑기를 맞았다. 개혁·개방 외에 붕괴를 막을 길이 없었다. 이에 따라 집단 생산 형태인 농업 분야와 비효율 투성이인 국영기업을 단계적으로 개혁했고, 전기·수도·교통 등의 필수 인프라를 제외한 모든 상품 가격을 신속하게 자유화했다. 또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대외 개방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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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하노이 - 해 질 녘의 베트남 하노이 시내 작은 호수인 동다호 전경. 호수 주변을 새로 들어선 고층 건물과 아파트, 호텔이 둘러싸고 있다. /123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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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이머이 성공의 진정한 비결은 개혁의 구체적 방법에 앞서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의 근본적 '세계관 전환'이었다. 호주 전략정책연구소(ASPI)의 수석 분석가 홍 레 투는 작년 8월 보고서에서 "하노이 정부로선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세계관과 외교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길만이 유일한 살길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1964년 북베트남 시절부터 계속된 미국의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고 국제 경제 질서에 편입되기 위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온갖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수용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베트남 재정·경제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모든 자료를 국제 기준에 맞춰 제공했고, 외국 정부 원조(ODA)에 앞서 국제 개발은행들의 조언을 받아 법규를 정비했다.

하지만 미국이 '목줄'을 쥐고 있는 한 ODA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7일 미국의 북한 관련 싱크탱크인 '38 노스(North)'의 한 보고서는 "베트남이 캄보디아에서 철군(1989년)하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사찰, 대규모 감군(減軍) 등 미국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고 나서야 미국의 제재가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포스코경영연구원(POSRI)의 오영일 수석 연구원은 지난 14일 보고서에서 "베트남은 80년대 초반부터 계속 대미(對美)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지만, 미국 정부는 1994년 제재를 완전히 풀어주기 전에 애초 설정한 목적에 대한 양보가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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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미국의 제재가 풀리자 전 세계에서 FDI가 급속히 유입됐다. 1993년 274건(28억달러)에 불과했던 FDI는 작년에 2741건(371억달러)로 100배 이상 늘었다. 한국의 투자액도 2017년 말 561억9000만달러로 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물론 일본(478억달러)보다도 높다. 외국 투자는 현재 스마트폰 등의 전자제품 생산과 기계류, 봉제 산업에 몰렸고 베트남은 수출이 GDP의 97.3%를 차지하는 경제 구조로 바뀌었다. 미국은 베트남의 제1 수출국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베트남은 또 미국과 유대 강화를 통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전략적 독립도 이룰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베트남의 개혁 시기는 '자유무역'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당시 세계 분위기와도 맞물렸다. 그래서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아세안(ASEAN)·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한국·EU·일본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며 이 흐름을 탈 수 있었다. 이 밖에 '도이머이'의 성공엔 1986년 '중간(median) 나이'가 20세(북한 34세)에 그쳤던 젊은 인구 구성과 호찌민시티(구 사이공)를 중심으로 남부에 남아 있던 자본주의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현재 베트남인들은 자국 모델의 성공을 전파하게 됐다며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크게 반긴다. 싱가포르 소재 동남아시아연구소의 베트남 전문가인 레 홍 히엡은 "베트남 정부는 전 세계에 이미지를 높이고 공산당 통치의 유효성을 알릴 좋은 기회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65년 이상 주체사상에만 물들었던 북한의 개혁은 사실상 제로(0)에서 시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베트남보다는 개혁·개방 학습 곡선이 훨씬 가파를 수밖에 없다. POSRI 보고서는 "북한은 법·제도가 미비하고 국가 리스크는 높아 국제 금융기구나 외국의 원조, FDI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北이 베트남과 다른 점… 핵, 권력세습, 중국의 지원
"베트남 모델 그대로 따르기엔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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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북한은 전 세계 최빈국(最貧國) 중 하나라는 점에서 1986년 '도미머이' 직전의 베트남과 닮은꼴이다. 그러나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고, 3대째 내려오는 '백두 혈통'이란 김씨 절대 왕조를 지켜야 하고, 중국처럼 국제 제재 배후에서 은밀하게 북한을 지원하는 나라들이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과 완전히 다르다. 이런 차이가 개혁의 과실(果實)만 보고 베트남 모델을 따르려는 북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호주 ASPI의 홍 레 투 분석가는 "핵과 중국이란 지원 세력을 가진 북한이 얼마나 베트남처럼 서방의 국제 법규와 국제 질서에 순응하려 할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지금은 또 '보호무역'과 '자국 우선주의'가 판치는 세상이고, 외국 기업들은 국제사회의 수십 년 제재하에 있는 북한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또 베트남은 여전히 공산당이 지배하지만, 젊은 층 대부분은 현재 당 서기장, 대통령(국가원수), 총리(정부수반), 국회의장 등 당의 최고지도층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도 못한다. 그만큼 개혁 이후 베트남 공산당의 지배는 북한처럼 폭압적이지도 않았고, 사회 분위기는 자유로워졌다. '건국의 아버지'라는 호찌민조차도 김씨 일가와 같은 절대 권력을 누리지 못했다. 김정은이 주체사상의 훼손과 권력 약화 등 '도이머이' 개혁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이런 부산물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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