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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양해원의 말글 탐험] [85] 자잘함과 군더더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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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양해원 글지기 대표


지하철에서 적선(積善)한 대가로 ‘○캔디’를 받았다. 사무실 들어와 맛보려는데 암만 살펴도 몇 개들이 표시는 없다. 대신 원재료명과 함량, 포장재, 청량감 등급 따위 정보가 자그만 상자 여섯 면에 그득하다. 심지어 ‘품목 보고 번호’라는 열세 자리 숫자까지. 이런 게 다 필요할까. 까닭 모를 문구 넘치는 신문 기사로 생각이 번진다.

'언론들은 향후 영국 정부가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여기서 '향후(向後)'는 '앞으로' 같은 뜻인데 쓸데없어 보인다. '대안을 내놓을지 예측'에서 다가올 일임이 이미 나타났으니까. '차후' '추후' 따위도 얼추 그렇다.

군더더기 하면 '직접'을 제쳐 놓을 수 없다. '휴전에 합의한 지 한 달여 만에 양측 대표가 직접 대면한 것이다.' 서로 얼굴을 맞대는 일이 '대면(對面)'일진대 '직접'이 무슨 필요가 있나.

'올해부터 75세 이상의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종전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고….' '5년에서 3년으로'라 했으니 이전에 5년이었다는 얘기다. '종전(從前)'이 군더더기임을 알 수 있다. '현행' '현재' 역시 비슷하다.

'관제 공역 내에 드론 시험 비행장이 생기기는 이번이 전국 처음이다.' 전국에서 처음이라는데 지난번이 어디 있고 다음번이 어디 있나. 당연히 '이번'이니 굳이 안 써도 될 것을….

'아베 총리는 지난 5월 그의 친구가 운영하는 사학 법인의 스캔들이 터진 뒤….' '그의'가 없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문맥상 아베 총리 아닌 남의 친구일 리야. 전혀 문제없다는 얘기다.

이제껏 따진 표현이 강조하거나 분명히 밝히려는 쓰임이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자잘함이 지나치면 췌사(贅辭)가 되기 십상이다.

사탕 하나 물고 다시 헤아려본다. 미주알고주알 갑에 적은 것은 법에서 정했으려니. 말이나 글 세상의 법은 대체로 반대편. 과연 이 글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머리가 쭈뼛해지는데, 엎질러진 물이다.

[양해원 글지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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