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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트럼프 "NYT는 국민의 적"… 설즈버거 "독재자들이나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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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NYT 콕 찍어 공격… NYT 발행인, 즉각 반박 성명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뉴욕타임스(NYT)를 향해 "국민의 적(敵)"이라고 공격하자,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38) NYT 발행인이 트럼프를 "미국의 원칙을 후퇴시키는 대통령"이라고 맞받아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국 최고 권력자와 미국 최고 권위지 발행인이 언론과 대통령직의 가치와 원칙을 두고 맞붙은 것이다.

20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뉴욕타임스는 진정으로 국민의 적"이라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가 비판적인 언론들을 싸잡아 '국민의 적'이라고 부른 적은 많았지만, 특정 언론사를 콕 찍어 거명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이 글을 올리기 2시간 전에도 "언론이 이보다 더 부정직했던 적은 없다. 기사는 사실을 바탕으로 쓰이지 않고, 기자들은 사실 확인 전화조차 하지 않는다. 통제불능이다"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가 NYT를 비난한 것은 트럼프의 수사 외압 의혹 보도가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NYT는 19일 "트럼프가 작년 말 매슈 휘터커 법무장관 대행에게 자신의 성추문 스캔들을 수사하는 검사를 측근인 제프리 버먼 뉴욕 남부지구 연방검사로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보도가 정확하다면 트럼프는 사법 방해죄에 연루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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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NYT를 공격하고 몇 시간 뒤 설즈버거 NYT 발행인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설즈버거는 NYT를 이끄는 설즈버거 가문의 6번째 후계자로, 작년부터 아버지를 이어 발행인을 맡고 있다. 그는 성명서에서 "'국민의 적'이라는 표현은 잘못됐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며 "역사적으로 폭군과 독재자가 공공의 정보를 통제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써 왔다"고 되받아쳤다.

설즈버거는 작년과 올해 두 차례 있었던 트럼프와의 회동을 언급하면서 "나는 대통령에게 그가 사용하는 (언론에 대한) 자극적인 레토릭(수사)이 국내외 저널리스트를 향한 협박과 폭력을 조장한다고 수차례 얘기했다"며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고 악의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원칙을 명백히 후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제까지 오벌 오피스(백악관 집무실)를 지켰던 전임자들이 자신의 정치색과 정당, 그리고 자신에 대한 보도가 호의적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맹렬히 그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다"고 했다.

설즈버거는 언론의 자유는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역대 대통령들의 언론관을 열거했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언론의 자유는 우리 사회를 지키는 최상의 안보"라 했고, 존 F 케네디는 "비록 그 논조에 동의하지 않거나, 언론이 이걸 기사화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할지라도 적극적인 언론이 없다면 우리(정치인)는 우리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로널드 레이건은 "자유롭고, 강하며, 독립적인 언론은 우리 사회의 성공을 지키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설즈버거는 "어떤 결과가 있든지 간에 우리는 진실을 추구할 것"이라며 "그 사실만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와 NYT의 불협화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수시로 '망해가는(failing) 뉴욕타임스'라며 NYT를 공격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NYT와 원만한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2016년 대통령 당선 2주 뒤 수행원들을 이끌고 직접 NYT 본사를 찾아가 임원진과 면담을 가졌다. 당시 트럼프는 "불행하게도 매일 NYT를 본다. 안 보면 20년은 더 살 수 있을 텐데"라며, NYT의 독자임을 인정했다. 그는 또 "NYT는 세계의 보석"이라며 대선 내내 그를 비판했던 NYT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CNN은 NYT의 영향력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뉴욕 토박이' 트럼프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해석했다.

트럼프는 작년 7월엔 그해 1월 발행인에 오른 설즈버거를 뉴저지에 있는 자신의 골프장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당초 둘의 만남은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트럼프가 트위터에 "설즈버거와 매우 좋고 흥미로운 만남을 가졌다. 가짜 뉴스가 어떻게 '국민의 적'으로 바뀌었는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밝히면서 외부에 공개됐다. 올해 1월에도 설즈버거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설즈버거가 "식사 대신 백악관에서 인터뷰하자"고 제안해 1월 31일 설즈버거와 백악관 출입 기자 두 명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85분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뉴욕=오윤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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