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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임종진의 오늘 하루]낡은 열차가 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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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부선 무궁화 열차 안에서 바라본 겨울 들녘 풍경. 2019. 2.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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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무궁화 열차를 탔다. 차창 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이 정겨웠다. 약속된 시간이 빠듯한 탓에 다소 조급한 마음이었는데 널찍한 좌석에 앉는 순간 왠지 편안한 느낌이 쑥 들었다. 가는 시간 동안 겨울 끝자락의 들녘을 눈으로 즐겼다. 지역에 갈 일정이 있으면 예외 없이 고속열차를 타는 일이 잦았다. 시간을 줄이고 줄이는 일상이 늘 되풀이되었고 하루 중 또 다른 일정을 끼워 넣기 바빴다. 그래서일까. 오래되어 낡은 데다 느리기까지 한 무궁화 열차 안에서의 느낌이 생경하면서 반가웠다. 모처럼 얻은 여유를 부리며 잠시 후에 서게 될 ‘자리’를 생각했다. 여러 이유로 다양한 지역을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어찌 보면 연단에 홀로 서서 불특정한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받거나 생각과 관점을 나누는 자리. 열차의 흔들림에 기대어 그 ‘자리’를 다시 살펴보고 싶었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나의 얘기는 그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강연의 주제나 심리적 헤아림만 잘 전달하면 될 일이라던 관습적인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자칫 일방적으로 떠들다가 오기 마련인 그 자리가 결국은 사람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 아닐까 돌이켜 보게 된 것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을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어인 일인지 몸의 자세가 곧추세워지고 마음이 단단해졌다. 시간을 쪼개며 살다가 그 시간의 의미를 다시 품어보는 시간. 무궁화 열차는 여전히 흔들리고 창밖 눈풍경은 그대로였다. 문득 세상은 원래 하얗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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