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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블록체인-환상인가 혁신인가]신기루? 신세계?…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미로 ‘블록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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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야 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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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으면 건물 사지, 비트코인 안 사” vs “기존 금융 시스템 못 믿어”

눈에 보이지 않는 블록체인 기술,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 여전히 많지만

중앙화된 금융 권력에 대한 반발심 극에 달한 이들은 블록체인을 ‘신봉’


지난해 말 찾았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히폴 공항. 현금을 입금해 비트코인을 찾을 수 있는 비트코인 무인 자동입출금기(ATM)를 한 시간 정도 지켜봤다. 하루에 1만명 넘게 인출기 앞을 지나가지만 정작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럽 공항 중 최초로 설치된 비트코인 ATM이지만 이용은 극히 저조했다. 인출기 앞 공항안내소 직원은 “ATM을 이용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가상통화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이용률이 낮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은 실재하는 걸 원한다”며 “돈이 있으면 건물을 사지, 비트코인을 살 것 같진 않다”고 덧붙였다. 블록체인과 가상통화는 일상에서 아직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블록체인 진영은 기존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암스테르담 도심의 비트코인 ATM 상점 한쪽 벽에는 빛이 바래고, 귀퉁이들이 떨어져나간 여러 장의 달러화 위로 ‘골드만 석스(Goldman Sucks)’가 적혀 있는 그림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를 비난하고 있다. 상점 직원 알렉스(30)는 “거대 투자은행을 불신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진영은 중앙화된 금융권력에 대한 반발심이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을 탄생시켰다고 보고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논문을 발표한 때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0월31일이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투자은행들이 구제금융으로 기사회생한 후 오히려 보너스 잔치를 하며 기득권을 이어가는 데 대한 불만이 블록체인과 가상통화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10년이 지난 지금 금융과 의료 등 다양한 분야로의 응용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불변성 등이 기존 사회규범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잊힐 권리와 블록체인

“블록체인 성장하는 과정일 뿐…진짜 기술,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

한번 기록된 정보는 정정·삭제 어려워 ‘잊힐 권리·수정될 권리’ 침해

국제분쟁 발생 때도 기준 모호…특정 집단이 가상통화 ‘담합’ 할수도

가상통화, 화폐보다는 주식 개념…거래 거품 꺼지면 시장 안정화될 것


가상통화에 대한 불신과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한 논쟁이 불러올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면 먼저 그 한계와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11월20일 발표한 ‘블록체인 기술영향평가’를 보면 윤리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먼저 눈에 띈다.

블록체인은 정보의 정정이나 삭제가 어려워 개인정보보호법과 전자금융거래법 등의 ‘수정할 권리’와 ‘잊힐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처리자는) 보유기간의 경과, 개인정보 처리 목적 달성 등 그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됐을 때 지체없이 그 정보를 파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잊힐 권리(삭제권)는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에서도 요구하는 사안이라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유럽 내 블록체인 서비스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에 한번 기록된 데이터는 파기할 수 없다. 특히 퍼블릭 블록체인은 관리주체가 없어 시정조치를 요구할 상대조차 없다. 이더리움의 경우 전반적인 관리를 하는 재단은 있지만 문제 해결이 임무는 아니다. 참여자 모두에게 정보가 공개되는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현재로선 없다. 보안전문가 류동주 비트레스 대표는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정보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하는 기술인데 개인정보는 투명하게 드러나선 안된다는 점에서 두 개념이 충돌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현실적으로 블록체인에는 가능한 한 민감한 개인정보를 담지 않고, 참여자가 퍼블릭 대신 제한된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여기서 개인정보를 블록체인 외부에 별도 보관하거나 보이지 않도록 회피하는 설계도 고려할 수 있다. 블록체인에는 개인정보가 외부에 저장된 주소값만 암호화해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링크를 불러오는 방식이다.

민경식 인터넷진흥원 블록체인확산팀장은 “큰 서고가 있고, 그 서고의 번호표만 블록에 담아 불러내는 방식이 가능하다”면서 “블록체인 공공시범 사업도 주민번호와 의료 데이터, 개인이 알리기 싫은 병력이나 정치적 성향과 같은 민감한 정보는 블록체인에 담지 않고, 별도로 보관해 사용기간이 지나면 폐기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서비스가 국경 구분 없이 이뤄질 경우 분쟁이 발생했을 때 어느 나라 법을 적용할지의 문제도 있다.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가 증거인데, 블록체인상에 저장된 문서에 이런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가상통화 채굴이 기업화하면서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우려도 크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은 과반수 다수결을 ‘참’으로 본다. 이론상 채굴량의 51% 이상을 차지한 집단이 담합하면 장부 조작이 가능하다. 틀린 장부를 맞았다고 할 수 있고, 맞는 장부를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지난 1월 초 이더리움클래식을 대상으로 이런 ‘51% 공격’이 일어나 20만달러 이상의 가상통화가 도난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재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의 상위 5개 채굴업자가 전체 채굴량의 51% 이상을 점하고 있다. 이들이 담합해 장부를 조작한 순간 해당 가상통화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가치가 급락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런 담합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위험요소의 하나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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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통화는 주식 같은 것”

가상통화는 최근 1년간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사라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많은 자금이 투자됐고, 익명성이 보장돼 자금 출처를 추적당할 우려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가상통화 폭락을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도 있다. 거품을 없애 정상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 오히려 건강한 출발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이다.

블록체인 전문가들은 가상통화가 투자자금 유치가 아니라 투기수단으로 변질돼 거품을 만들어냈다고 보고 있다. 변동성이 크고, 지불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상통화를 화폐처럼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블록체인상에서의 거래를 위한 자산으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나왔다. 가상통화는 화폐가 아니라 ‘주식’과 같은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민경식 팀장은 이런 점에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을 가상통화로 부르는 대신 ‘암호자산’으로 부르는 게 본뜻에 가깝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민관 블록체인 컨소시엄 ‘알라스트리아’ 창립자 알렉스 푸이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플랫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며 “비트코인 자체가 그 플랫폼에 대한 주식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빵을 사는 데 주식을 사용하지 않듯 지불수단이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가상통화 거래가 제도화되고, 기관투자가와 같은 ‘똑똑한 큰손’이 참여할수록 가상통화 거래시장이 건전해지고 효율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보였다.

정보기술 업계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나 공유경제 분야의 플랫폼 기업들이 이익을 독식하는 상황도 블록체인에 기반한 가상통화로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거나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참여 활동을 가상통화로 보상하고, 금융결제 수수료를 낮춰 이를 이용자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이다. 카풀업체 풀러스의 서영우 대표는 “블록체인으로 카드사나 은행을 거칠 필요가 없어지면 수수료를 극단적으로 낮출 수 있다”며 “줄어드는 금융비용을 이용자들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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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통화, 왕이 될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비트코인 자동입출금기(ATM) 상점 내부에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비트코인 킹’으로 표현한 그림이 걸려 있다. 암스테르담 |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 “성장통 겪는 과정”

업계는 블록체인의 현재 기술 발전 수준을 중간 정도로 보고 있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부테린도 이더리움의 완성도가 아직 채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딜로이트는 2017년 당시 존재하던 8만6000여개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중 약 5%만 생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성장통을 겪는 것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면서 “정부가 블록체인 서비스를 육성할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국내 기업들이 블록체인 사업을 하기 위해 외국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가 가상통화공개(ICO)로 한몫 챙기려는 행태를 보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통화는 익명성을 이용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한 탈세나 불법 물품 거래 등에 악용될 가능성이 여전하다. 다만 박 센터장은 이 같은 가상통화 관련 문제점을 강력하게 규제하면서 좋은 내용들은 살릴 수 있다면서 현재처럼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무법’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이 인터넷처럼 일상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기술이라면 과도한 기대는 독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홈페이지 하나 구축하는 걸로 거액의 투자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 블록체인 업계는 거품을 걷어낸 자리에서 실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의 인터넷이 서버(중앙)와 클라이언트(개별 이용자)의 일방통행식 네트워크라면 블록체인 기반 인터넷은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분산형 네트워크로 바뀐다. 이런 근본적 변화 속에서도 이용자가 지금 이용하는 인터넷 서비스와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편하고 자연스럽게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블록체인도 인터넷처럼

일상에 깊이 침투하면

너무 당연해서

보이지 않게 될 거예요

- 스페인 민간 블록체인 컨소시엄

‘알라스트리아’ 창립자 알렉스 푸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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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민관 블록체인 컨소시엄 ‘알라스트리아’의 창립자인 알렉스 푸이그. 바르셀로나 | 주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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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넷 프로토콜과 관련한 콘퍼런스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듯이 블록체인도 일상에 깊이 침투하면 너무 당연해서 안 보일 정도가 될 겁니다.”

알라스트리아의 창립자 푸이그가 전망한 블록체인의 미래다.

민경식 팀장은 미래의 블록체인이 퍼블릭과 프라이빗이 혼재된 하이브리드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인터넷도 처음에는 회원 가입이 없었다가 수익 모델이 생기면서 회원 가입 수요가 발생했다”며 “지금은 퍼블릭으로 시작한 기업이 프라이빗으로 변하기도 하고 반대의 움직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

■ 시리즈 목차

① 중간자를 없애라

② 공유와 참여 이끄는 기술

③ 블록체인 특화도시를 가다

④ 속도 내는 한국

⑤ 가상통화에 대한 엇갈린 시선

⑥ 넘어야 할 과제


■ 특별취재팀

임지선(산업부), 주영재(주간경향부), 이재덕(뉴콘텐츠팀) 기자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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