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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하숙집 네트워크가 3·1 학생 시위 이끌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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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막전막후] [3] 학생들이 3·1운동 주도하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정보 공유… 의기투합해 만세 시위에 참가

조선일보

김상태 서울대병원의학역사문화원 교수


1910년대 조선은 암울했다. 사상, 언론, 출판의 자유는 아예 없었다. 헌병과 순사 횡포에 시달렸다. 학교에서도 조선인은 뒷전이었다.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열등하다는 궤변을 귀 따갑도록 들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투지는 높았다. 공부도, 축구도 일본인에게 질 수는 없었다.

1919년 1월 하순부터 서울의 전문학교 학생 대표들이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경성전수학교(지금의 서울대 법대)의 윤자영, 경성공전(서울대 공대)의 김대우, 경성의전의 김형기와 한위건, 연희전문의 김원벽, 세브란스의전의 이용설·김문진, 보성법률상업학교(고려대)의 강기덕 등이었다. 그들은 국내외 정세를 토론하고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당시 새 학기는 4월 1일부터 시작됐다. 2월 하순은 학년말 시험 준비로 바쁜 때였다. 하지만 1919년은 달랐다. 시험도, "경고망동하지 말라"는 학교 경고도 안중에 없었다. 학생들은 토론을 거쳐 독립시위 참가 의지를 불태웠다.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학생 중심의 독립선언식이 열렸다. 그날 오후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종로, 남대문, 덕수궁 앞 등지에서 첫 만세 시위를 벌였다. 훗날 일제 강점기 최고 외과의사가 된 백인제, 세브란스의대 학장을 지낸 이용설, 소설 '상록수' 작가 심훈,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 서양화가 도상봉 등도 시위 대열에 있었다. 3월 5일 오전 9시쯤부터 남대문역에서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제2차 만세 시위를 벌였다.

그해 8월 말 예심 종결 후 경성지방법원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210명이었다. 그 중 학생은 164명이었다. 재판을 받은 전문학교 학생들의 고향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이 유난히 많았다. 경성의전의 경우 32명 중 평안도와 함경도는 똑같이 11명이었다. 재학생 중에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평안도는 개신교를 통해 서양 문물 수용에 선진적이었고 애국계몽운동의 본고장이었다. 함경도는 교육열이 대단했다.

3·1 시위 때는 하숙집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북촌이나 각 학교 부근엔 하숙집이 많았다. 지식인들이 운영하는 하숙집이 대부분이었다. 전문학교 교수가 하숙집 주인인 경우도 있었다. 평안도와 함경도 '전문' 하숙집도 꽤 많았다. 같은 학교 선후배뿐 아니라 서로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하숙 생활을 통해 동지가 됐다. 학생들은 하숙집에서 정세를 토론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의기투합해서 만세 시위에 함께 참여했다.

투옥된 학생들은 용감했다. 3월 중순 한 여학생이 취조를 받았다. 여학생이 이렇게 물었다. "내게 두 명의 남편, 즉 호적상 남편과 내연 관계인 남편이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따르라고 조언하겠습니까?" 수사관은 대답했다. "그야 물론 법적인 남편이지." 여학생은 기다렸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조선은 내 호적상의 남편입니다. 난 당신도 옳다고 인정하는 행동을 한 것뿐인데, 왜 날 못살게 구는 겁니까?"

3월 1일과 5일의 대규모 시위로 허를 찔린 총독부 경찰의 경계도 강화됐다. 학생들은 방향을 바꿔 '지하신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배재고보의 장용하는 1919년 3~4월 '반도의 목탁' 등 격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중앙고보의 박노영·윤익중, 보성학교의 정설교 등은 1919년 4월 '혁신공보'를 발행해 국내에서 수집한 기밀과 해외 독립운동 소식을 알렸다. 지하신문은 서울에서 3·1운동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기여했다. 고향으로 내려간 학생도 많았다. 3·1운동을 확산하기 위해서였다. 유관순이 대표적이다. 제2의 유관순도 많았다. 학생들은 3·1운동을 전국적이고 거족적인 독립운동으로 폭발시킨 동력이었다.

공동기획: 한국민족운동사학회



[김상태 서울대병원의학역사문화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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