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장관→농부→5급사무관…농촌살리기 팔걷은 이동필 前농림장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경북도청에서 지방 소멸 위기 극복과 농촌 살리기 등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성덕 기자]


그의 손은 거칠고 투박했다.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과 손등에 난 상처는 어김없는 촌부의 손이었다. 매일 흙을 만지며 살다 보니 농사일에 혹사당한 손은 숨길 수가 없었다. 불과 2년4개월 전만 하더라도 '장관님'으로 불렸던 그다. 장관에서 영락없는 촌부가 된 그는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63). 박근혜정부 초대 장관에 임명된 후 3년6개월간 역대 최장수 농림부 장관(2013년 3월 11일~2016년 9월 4일)을 지냈다.

2016년 공직생활을 마감한 후 곧바로 고향인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 내려왔다. 공직을 떠나 초야에 묻혔지만 농사를 지어보니 그의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농촌에 살다 보니 농촌이 망해 가는 게 보였다"며 "도저히 가만히 앉아 지켜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그는 다시 공직에 섰다. 이번에는 5급 사무관이다. 올해부터 경북도의 농촌살리기 정책자문관으로 임명돼 '농촌 살리기'의 최일선에 선 것이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경북도청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메일 아이디가 '단촌(danchon)'이다.

▷단촌은 내 고향이다. 컴퓨터를 시작한 게 1980년대 중반인데 이후 이메일에는 항상 단촌이란 아이디를 써 왔다. 지금까지 30년 이상 단촌이란 단어를 입력해야 하루 일을 시작하고 마칠 수 있었다. 객지에서도 어느 하루 단촌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다(웃음).

―40년 만에 낙향했다.

▷특별한 목적을 갖고 낙향하지는 않았다. 당초 고향을 떠나 집을 나설 때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올해 여든일곱이신데 눈이 잘 안 보이신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공수신퇴(功遂身退)'라는 말이 있다. '공을 세우면 몸은 물러난다'는 말이다.

―귀농 4년 차, 촌부가 다 됐겠다.

▷처음에는 텃밭이나 가꾸며 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농사 규모가 늘어났다. 지난해는 밭농사 2000평, 논농사 800평 정도를 했다. 농사를 늘린 건 돈을 번다기보다도 농사꾼의 삶, 걱정거리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동안 연구원이나 정부 입장에서 생각하다가 정책 수요자가 되어서 생산과 판매까지 직접 겪어보고 싶었다. 들판에 엎드려서 농사를 지어보니 농업인들의 삶과 농촌 실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매일경제

―수요자의 심정이란 게 뭔가.

▷정책을 시행하는 당국의 입장이 아니라 대상자의 입장에서 농정을 볼 수 있었다는 말이다. 농기계가 없이 임작업(삯을 받고 농작업을 대신하는 일)을 하고 여기저기 농산물을 팔러 다니면서 노동력 부족과 높은 자재 가격, 수시로 변하는 농산물 시세, 그마저 팔 곳이 없어 막연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책상에서 입안한 정책들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왜 그런지 정책 수요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농촌 실상은 어떤가.

▷참담하다. 228개 기초단체 중 89개가 소멸위험지역이란 연구결과도 있다.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 혼자 살거나 편찮은 분들이 많아서 마을 전체가 '요양원'과 비슷하다. 올 들어서 우리 마을에 어른 세 분이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계시는 어른도 여러 명이다. 어쩌다 한둘 있는 젊은이들에게서도 꿈과 희망, 용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아니면 농사를 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더 늦기 전에 농촌을 살리고 인구 감소를 막아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5급 사무관으로 다시 공직에 나섰나.

▷그렇다. 퇴직한 사람이 다 잊고 텃밭이나 가꾸면 내 한 몸은 편하다. 하지만 평생 공부해 온 농업과 농촌의 실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과연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고향창생의 불씨를 살린다면 여생을 가치 있게 사는 게 아니겠나 싶었다.

―농촌 붕괴와 지방 소멸에 대한 위기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국가와 지방, 심지어 주민들까지도 진짜 위기라고 느끼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방 소멸은 단순히 농촌에 사는 농민들의 삶터만 없어지는 게 아니다. 식량 문제, 국토와 경관 보존, 환경 문제, 전통문화의 유지나 삶의 질 등 굉장히 많은 걸 담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가 지방 소멸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된다. 마스다 히로야가 쓴 '지방소멸'이란 보고서를 보면 일본은 고령화와 가임여성 유출로 지방이 소멸하고 도쿄로 몰려든 인구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해 2060년 인구가 8600만명으로 줄어 일본이 파멸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농촌에 살다 보면 이런 파멸 경고음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 동네 단촌초등학교는 올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다. 시외버스터미널에도 노선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일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농촌이 무너지고 있다.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국토개발에서 지역균형발전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수도권 규제 완화를 보다 신중하게 해야 한다. 또 소멸 우려가 큰 낙후지역의 개발을 촉진하는 실효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지역의 특색을 살린 지역개발과 이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수도권 규제 완화가 균형발전을 가로막고 있나.

▷지자체마다 인구를 늘리려는 의욕은 크다. 하지만 안정된 재원과 역량으로 가시화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결국 수도권 때문이다. 수도권 개발제한 완화는 균형발전을 훼손하고 있다. 인구나 경제는 물과 같아서 한 곳에 우물을 깊게 파면 다른 곳의 물도 그쪽으로 흘러들기 마련이다. 최근 발표된 3기 수도권 신도시 건설 등 수도권 개발 구상과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을 통해 수도권에 크고 깊은 우물을 파면 지방은 아무리 노력해봤자 효과가 안 난다.

―낙후지역은 어떻게 개발해야 하나.

▷스마트한 축소를 전제로 압축도시와 농촌 살리기 전략이다. 지역주민들이 편리하게 생활하고 문화복지와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내실 있는 압축도시로 개발해야 된다. 지역이 가진 자원을 기초로 특색 있는 산업을 육성해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를 만들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 수 있도록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등 튼튼한 인구 댐을 만들어야 된다. 즉, 읍·면 소재지에 수준 높은 공공서비스와 생활편의, 문화복지 시설을 제공하고 배후지 마을을 연결해서 주민들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정부는 낙후지역 개발을 위한 특별조치법 등을 통해 지자체의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고 지역개발에 대한 재량권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고향기부금제도 도입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 "村夫로 느낀 농촌, 장관 때와 달라…살맛나는 고향 만들고파"

매일경제

장관에서 촌부로
지난해 11월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한약재와 화장품 원료 등으로 쓰이는 작약을 심기 위해 농기계로 밭을 갈고 있는 모습. [사진 = 페이스북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년들을 농촌으로 유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농업은 힘들고 돈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바꿔주는 게 중요하다. 요즘 첨단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팜과 생산에 가공, 유통, 체험관광을 융·복합한 6차 산업 등 농업의 내용과 형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관광농업, 체험농업, 치유농업까지 생겨났다. 농업도 즐기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기회를 제공하고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 확장된 개념의 애그리비즈니스에서 MBA 같은 전문교육을 통해 운명을 개척하는 기술과 '기업가 정신'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전문기술을 가진 농기업 경영자가 미래 농업을 짊어지고 갈 것이다.

―우리나라 농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농가 수와 농가 인구는 줄어들고 노동력 부족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지난 30년간 구조개선 노력으로 일부 규모화된 전업농이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농업은 영세고령농으로 특징된다. 우리 농업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체질개선과 융·복합화를 통해 안정적인 식량 공급과 매력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국토와 자연경관, 환경과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공익적 기능에 대한 국민 공감대도 확산해 나가야 한다. 눈먼 돈으로 하는 농촌 살리기가 아니라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자구노력을 하고 정부와 국민이 이를 지원하고 응원할 때 농촌은 살아날 수 있다.

―장관 시절을 소회한다면.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가뭄 등 재난은 물론 쌀 관세화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역사 앞에 책임을 진다는 각오로 나름 열심히 뛰었다. 6차 산업화와 스마트팜, 도시농업 등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놨지만 귀농·귀촌과 청년일자리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그중에서 농업 경영체를 등록하고 이를 기초로 농가의 규모와 경영주 연령을 기준으로 농가의 유형을 구분하고 맞춤형 정책을 도입하려던 구상은 실천에 옮기기 직전에 그만두게 돼 아쉬움으로 남는다.

▶▶ He is…

△1955년 경북 의성 △1978년 영남대 축산학과 △1981년 서울대 대학원 농업경제학과 △1991년 미주리대 농경제학 박사 △2000~2011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지식정보센터장·기획관리실장 △2006~2012년 농림수산식품부 규제심사위원장 △2011~2013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2013~2016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2019년 경북도 농촌살리기 정책자문관(5급)

[안동 = 우성덕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