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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국민이 고발 내용 판단해달라” 임은정 검사는 왜 검찰 최고 지휘부를 실명 고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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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들이 고발인의 고발 내용을 판단하여 주십시오!”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가 18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나는 고발한다’ 제목의 칼럼과 토론회 등을 통해 검찰 내부 성폭력 범죄 은폐 의혹을 정조준했다. 임 부장검사는 해당 칼럼에서 검찰 내 성추행 의혹 등을 둘러싼 ‘제 식구 감싸기’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부득이 지면을 빌려 문무일 검찰총장과 장영수·문찬석·여환섭 검사장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들 검찰 고위간부가 2015년 서울남부지검에서 벌어진 검사들의 성추행·성희롱 사건의 조직적 은폐에 가담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이에 대해 대검은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세계일보

서지현 검사 성추행 피해 사건을 당시 검찰 내부에서 덮었다는 의혹을 주장한 임은정 검사가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임 부장검사 “검찰 현재 ‘자아분열 상태’… 스스로 직권남용하며 바깥엔 ‘이중잣대’ 들이대”

임 부장검사는 칼럼에서 검찰 지휘부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그는 ‘검찰은 학교 성폭력을 덮은 교장이나 끈 떨어진 민정수석(우병우), 법원행정처 차장(임종헌)은 법의 처벌을 받게 했지만 정작 내부의 일에는 입을 다물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2018년 5월4일, 대검은 (내부 성범죄 은폐 의혹) 감찰 관련자들의 비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통보하며 제 (감찰) 요청건을 종결하였고, 조직적 은폐에 관여한 간부들을 대거 검사장으로 승진시켰다”며 “수뇌부 명령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성실함은 조직에의 헌신과 충성으로 칭송받고, 인사로 보답받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수사권과 기소권은 검찰의 여의봉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당시) 김진태 (검찰) 총장 등이 저지른 조직범죄를 문재인 정부의 문무일 총장이 여전히 감싸주는 현실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착잡하기 그지 없다”며 “정권은 유한하나, 검찰은 영원하고, 끈끈한 선후배로 이어진 검찰은 밖으로 칼을 겨눌 뿐 내부의 곪은 부위를 도려낼 생각이 전혀 없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임 부장검사는 검찰 내 성폭력조차 침묵한 검사들이 위법한 상사의 지시에 이의제기할 수 있을지 우려했다. 그는 지난 18일 열린 대한변협 인권보고대회에서 ‘미투운동과 2018년 대한민국’ 주제 토론자로 참석해 “(2015년 서울 남부지검 성폭력 사건)은 정말 ‘뻔한 사건’이다. 이런 ‘뻔한 사건’조차 책임을 묻지 않고서 검찰이 뭘 밝힐 수 있겠는가”라며 “검찰은 현재 ‘자아분열 상태’다. 내부에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하고 스스로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하면서 검찰 밖 사람은 법원, 학회장, 민정수석할 것 없이 처벌하며 ‘이중잣대’를 들이댄다”고 했다.

임 부장검사가 토론회에서 공개한 대검찰청 감찰본부와 주고받은 이메일에 따르면, 그는 감찰본부에 총 5차례 감찰-재감찰을 요청하며 “(해당 사안의) 징계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안다. 징계시효가 도과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주길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으나 감찰1과 측은 명확한 사유 명시 없이 제보 건을 종결처리했다고 알렸다.

임 부장검사는 칼럼 말미에 “검찰권을 검찰에 위임한 주권자 국민 여러분이 고발인의 고발 내용을 판단하여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고질적인 제식구 감싸기와 환부 도려내기를 주저하는 검찰에 검찰 내부의 부정비리 수사를 맡기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이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 등 검찰 개혁에 국민이 힘을 실어달라는 애기로 들린다.

세계일보

◆도대체 어떤 사건이길래···내부 성추행·성희롱 검사들 수사도, 징계도 안 받고 퇴직

현직 부장검사가 검찰 지휘부를 겨냥해 실명 고발한 사태의 도화선이 된 건 약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 부장검사와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2015년 4월 당시 서울남부지검 A부장검사와 검찰 간부 출신 아버지를 둔 B검사의 성추행 의혹이다. A부장검사는 저녁 식사를 한 뒤 후배 여검사를 아이스크림에 빗대 “네가 더 맛있어 보인다”고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일자 사표를 제출하고 지방으로 내려가 변호사로 개업했다. 감찰이나 징계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명예퇴직으로 처리됐고 1억7500만원의 명퇴수당이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에 B검사는 후배 검사를 성추행하고도 아무런 징계 없이 사직한 이후 대기업 법무팀 상무로 취직했다고 한다.

이들의 성추행·성희롱 혐의가 재검토된 건 3년가량 지나서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MeToo)’로 꾸려진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의 조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A 전 부장검사는 조사단의 수사로 다른 성추행 혐의가 추가로 드러났다. 2015년 3월 2차 회식 자리에서 한 여검사에게 “성추행 한 번 해도 되냐”고 말하며 그를 강제로 껴안았고, 다른 여검사와 건배를 한 뒤에는 “참, 안주를 안 먹었네”라며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춘 것으로 조사됐다. 그해 2월에는 노래방에서 회식 자리를 이어가다 “러브샷을 하자”며 술잔을 든 팔을 한 여검사 목에 감고 끌어안은 채 술을 마시고, 그의 볼에 입술을 갖다 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A 전 부장검사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로 지난해 7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금고형 이상이 아닌 벌금형에 그쳐 그에게 지급된 명퇴수당은 환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임 부장검사가 칼럼에서 ‘귀족감사’라 칭한 B 전 검사는 조사단 조사 이후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조사단은 B 전 검사를 강제추행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하면서도 당시 대검 감찰라인의 은폐 의혹에 대해선 결론을 내지 않은 채 해산했다.

◆임 부장검사, 검찰 수뇌부 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로 고발

임 부장검사는 가만 있지 않았다. 지난해 5월 A 전 부장검사와 B 전 검사의 성폭력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B 전 검사에 대한 감찰을 중단해 징계 없이 사직을 받아들였다며 당시 검찰 수뇌부를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고발 대상은 당시 의혹 대상자와 검찰 최고 책임자였던 김진태 검찰총장, 김수남 대검 차장, 이모 감찰본부장, 장모 감찰1과장, 김모 검사, 오모 남부지검장 등이다.

그의 고발은 6개월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고발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22일 고발인인 임 부장검사를 조사했다. 그 후 임 부장검사는 진술서나 참고자료를 추가로 제출할 필요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12월23일 서울중앙지검에 자신의 진술조서 등사를 신청했으나 검찰은 “사건 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생명, 신체의 안전이나 생활의 평온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정보공개신청을 불허했다. 일각에서 검찰이 사건을 축소하려 ‘시간끌기’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임 부장검사는 최근 자신의 SNS에 “검사 생활 18년간 그런 경우(불허)를 처음 봤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올해 1월29일 임 부장검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며 검찰은 개인정보 유출 등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비실명 처리하고 조서를 복사해주기로 결정한 바 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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