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들은 청와대와 무관하게 일어날 수 없다. 상식이다. 작년 8월 당시 환경부 장관은 국회에서 산하기관 일괄 사표에 대해 '청와대와 상의했느냐'는 질문에 '저는 인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답변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처음 폭로한 김태우 전 수사관은 청와대 특감반장이 특감반원들에게 "(현 정부 인사들을 위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면서 전국 330개 공공기관의 기관장·감사 660명 리스트 작성을 지시했으며, 이 중 야당 성향 100명은 따로 관리했다고도 증언했다. 이 밖에 산업통상자원부 간부가 한전(韓電) 발전회사 사장들을 호텔로 불러내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기획재정부가 민간 기업인 KT&G 사장 인사에 개입하려 했다는 문건이 공개된 적도 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김태우 수사관이 환경부 문건을 폭로했을 때 "블랙리스트는 특정 정부가 개인·집단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정부 조직을 동원해 명단을 뽑은 것"이라고 했다. 민간인 사찰에 대해선 "국가기관이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려고 지속적·조직적·계획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 수석 말 그대로 환경부가 말 안 듣는 산하기관 임원들을 쫓아내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조직적·계획적으로 사실상의 사찰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최근 청와대는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면 '답변 거부'를 대응 전략으로 삼고 있다. '드릴 말씀이 없다' '답변을 갖고 있지 않다' '모르는 일'이라는 등으로 얼버무리면 지금의 언론 환경에서 대부분 뭉개고 넘어갈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번에도 '모르는 일'이라고만 한다. 정말 몰라서가 아니라 사실을 감추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검찰은 블랙리스트 혐의로 전 정권 인사 수십 명을 법정에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현 정권의 블랙리스트 문제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검찰이 머뭇거린다면 결국 특검으로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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