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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독도 알리기 20년 ‘그림으로 보는 남북 통일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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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독도 화가’ 부부 권용섭·여영난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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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집네다.” 지난해 11월 평양 대동강변과 을밀대, 개성 박연폭포, 묘향산 등에서 진경산수 퍼포먼스를 펼친 재미 권용섭(61)·여영난(56) ‘독도 화가’ 부부가 전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다. 2003년에 이어 15년 만에 두번째로 방북 퍼포먼스를 한 권씨는 “그때보다 평양 거리도 밝아졌고 시민들 표정도 훨씬 호의적이었다”고 했다.

“오는 4·27 남북정상회담 1돌 기념으로 국내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독도화가 권용섭과 여영난의 그림으로 미리 보는 남북 통일전'을 열어 그때 직접 보고 그린 북녘땅 산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부부가 나란히 독도 작품을 출품한 <건달할배와 인사동 작가들>의 전시장인 서울 경운동 유카리화랑에서 최근 만난 부인 여씨의 바람이다. ‘미주 3·1절 기념 독도 퍼포먼스’ 준비를 하느라 엘에이에 체류중인 남편 권씨는 에스엔에스로 ‘문자 취재’를 했다.

지난해 11월 7박8일 북한 방문
을밀대·대동강변·박연폭포 등
‘진경산수 퍼포먼스’ 펼쳐 눈길
올봄 ‘4·27’ 1돌 기념 순회전 준비


2000년 일본 총리 망언파동 계기
첫 독도 개방 때 탐방 스케치
2004년 미국 이주해 전세계 ‘그림’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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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대구에서 활동하다 2000년 모리 일본 총리의 망언 파동을 계기로 ‘독도 지킴이’로 나선 부부는 2004년 미국으로 이주해 전세계를 돌며 독도 그림 전시와 퍼포먼스를 해왔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 독도 미술관인 ‘가야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부부는 영주권자 자격으로 지난해 11월 10~17일 7박8일간 풀뿌리통일운동단체 액션원코리아(AOK·상임대표 정연진), 뉴욕기반의 글로벌웹진 ‘뉴스로’(로창현 기자) 일행과 북한을 다녀왔다.

“워낙은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씨의 북한 통과에 동행하려고 계획한 일정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북한 당국의 불허로 마라톤은 무산됐지요. 우리 일행은 비교적 자유롭게 여러 지역을 둘러보며, 현장 퍼포먼스도 할 수 있었어요.”

일행은 1948년 남북연석회의가 열렸던 대동강 쑥섬에 3년 전 들어선 과학기술전당을 비롯해, 북한 최대의 석회동굴인 룡문대굴, 고려성균관과 왕건릉, 묘향산 보현사 등 유적지와 초대형 문수물놀이장 등등을 직접 동영상으로 찍어오기도 했다.

권씨는 “2003년엔 숙소 고려호텔에서 비공식으로나마 ‘남한의 비경과 독도 그림 전시’를 했다. 그때 만수대 창작사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을 주선해주겠다는 제안이 있었는데 ‘국가보안법 위반 사항’이라서 포기해야 했다”며 그로부터 15년이 훌쩍 흘러 다시 가보니 새삼 아쉬운 기회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부부는 만수대 창작사를 방문해 독도 그림 3점을 기증하고, 이번 초청을 주선한 해외동포원호위원회와 일행을 안내해준 큐레이터 등을 통해 ‘북한 예술작품 미국 전시’도 추진하기로 협의한 것을 이번 방북의 성과로 꼽았다.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소득은, 이번 북한 스케치를 통해 20여년간 준비해온 ‘한반도 8도 산하 실경 수묵화전’을 마침내 완성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권씨는 1998년 고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을 계기로 열린 금강산 관광길에 동영상 촬영을 금지하자 특유의 속사필법으로 100여점을 스케치해 전시를 했다. 그뒤 어언 20년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은 물론 북의 항일투쟁 유적지까지 두루 남북의 산하를 스케치했다. “한반도 곳곳을 실경으로 그린 전통 수묵화가는 남편이 유일할 것”이라고 여씨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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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독도 화가’로 이름난 사연은 권씨 표현대로 “운명적”이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일찌기 ‘고교생 화가’로 데뷔한 권씨는 1977년 스무살 때 친구와 함께 울릉도 여행을 갔고, 독도를 보고 싶어 도동항 부두 옆 가파른 암벽에 올랐다가 해일이 덥쳐 관광객 4명이 사망하는 사고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 트라우마 탓에 독도를 잊고 살려고 애썼는데 23년 뒤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모리 총리의 망언이 다시 용기를 내게 했어요. 운좋게 포항~울릉간 센플라워호가 30분 동안 독도를 일주해준 덕분에 ‘홀린 듯’ 50여장을 그렸지요. 그뒤로 지금껏 10번 정도 독도를 탐방했어요.”

1986년 <안동문화방송(MBC)>의 ‘티브이 개국’ 기념 개인전을 준비할 때 아르바이트생으로 인연을 맺은 부인 여씨 역시 서양화(현대미술)를 전공한 작가로 ‘독도 스케치’에 여러차례 동행해 그림을 그렸다. 부부는 2016년까지 10년 가까이 해마다 국회 등에서 ‘독도 그림전’을 열었다. 두 딸도 그림을 전공해 2001년 4월에는 온가족이 독도 스케치 탐방을 했고, 필리핀과 미국에서 가족전을 열기도 했다.

5년간 미국 20개주 순회전을 목표로 2004년 미국 이주를 감행한 부부는 전시 비용을 감당하고자 한국의 집까지 팔아야 했다. 그뒤 맨처음 브라질에서 ‘이과수 폭포’ 그림을 팔아 경비를 충당하며 세계순회전를 시작해 유럽권을 포함해 10여개 나라를 돌며 독도를 알렸다.

이들 부부는 ‘자꾸 다니면 길이 난다’라는 신념으로, 올 봄 한국 순회전을 돌며 통일의 꿈을 함께 그릴 ‘남북 화가 스케치단’을 구성할 구상도 내비쳤다.

“요즘 독도 알리기 20년 활동을 총정리하는 ‘’기행화집을 만들고 있어요. 4·5월 ‘남북 통일전’을 되도록 전국 여러 곳에서 열 수 있도록 뜻있는 분들의 후원 기대합니다.” 블로그 참조(m.blog.daum.net/dongkok)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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