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3 (월)

독재·민주화 운동···亞 미술 깨우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레나토 아블란 `민족의 드라마`


[아트쑈 아트썰-18] 1980년대 한국과 필리핀 작가의 그림이 묘하게 겹친다.

민중미술 작가 신학철(76)의 1989년 유화 '한국근대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필리핀 작가 레나토 아블란(66)의 1982년 유화 '민족의 드라마'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 고통받고 항거하는 민중을 그렸다. 신학철은 붓으로 1980년대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을 펼쳤고, 아블란도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억압으로 죽어가는 민중의 영혼을 캔버스로 위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는 아시아 현대 미술을 조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가 4년여 간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연구를 토대로 기획했다.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 미얀마, 캄보디아 등 아시아 13개국 주요 작가 100명 작품 170여 점을 전시했다.

1960~1990년대 아시아는 탈식민, 이념 대립, 베트남 전쟁, 민족주의 대두, 근대화, 민주화 운동 등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경험했다. 이 속에서 예술가들은 권위와 관습에 저항하고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꿈꿨다. 또한 기존 예술의 개념과 범주, 미술 제도에 도전하는 실험적 미술 사조를 이끌었다.

이번 전시는 '구조를 의심하다', '예술가와 도시', '새로운 연대' 3부로 구성된다. 국가별로 공간을 나눠 전시하지 않고, 초국가적 체계 안에서 비교하고 문화적 상호작용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매일경제

인도네시아 작가 F X 하르소노의 설치 미술 `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권총 모양 분홍색 크래커 더미가 관람객을 맞는다. 인도네시아 신미술 작가 F X 하르소노(70)의 설치 미술 '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다. 수하르토 군사 정권이 단행한 사회·정치적인 예술 검열에 저항하기 위해 제작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하르소노는 "1977년 신미술운동 전시 때 아이들이 달려들어 크래커 총을 먹기도 했다"며 "부지불식간에 일상에 잠입한 폭력성을 은유하는 작품이다. 관람객에게 문장으로 질문을 던지고 자발적으로 반응을 적도록 유도하면서 사회 문제를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쇠사슬로 동여맨 매트리스 설치 작품 '느슨한 쇠사슬'은 자면서도 구속을 걱정하는 민중을 대변했다.

한국 전위미술 선구자 김구림(83)이 1970년 미술 경계를 확장한 퍼포먼스 '현상에서 흔적으로-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를 기록한 프린트 작품도 전시됐다. 당시 한강변 잔디를 불로 태워 삼각형 흔적을 남기는 바람에 후폭풍이 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물감 살 돈도 없었던 젊은 시절에 모든 것이 캔버스라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지금이야 예술로 이야기되지만 당시엔 이 작업으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이 퍼포먼스를 재현한 영상 작품도 눈길을 끈다. 불탄 잔디에 새순이 돋아서 태워졌던 흔적이 사라지는 자연 현상을 미술로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싱가포르 작가 탕다우(76)는 1979년 철거된 동네 흔적을 담은 설치 작품 '도랑과 커튼', 무분별한 밀렵을 고발한 1989년 퍼포먼스 '그들은 코뿔소를 포획하고, 그 뿔을 채취하여, 이 음료를 만들었다'를 선보였다.

매일경제

윤석남 `어머니 2-딸과 아들`


페미니즘 역시 아시아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다. 1992년 버려진 나무에 그림을 그린 작품 '어머니 2-딸과 아들'을 전시한 윤석남 작가(80)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한국 여성 이야기를 꺼내고 소통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시는 5월 6일까지. 문의 (02)2188-6241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