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신율의 정치 읽기] 헛발질만 하는 한국당…법치 부정하는 민주당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로 등록한 김진태 의원, 황교안 전 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난 2월 13일 오전 국회에서 박관용 선관위원장과 선전을 다짐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 이승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치에서 예측 가능성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가 예측 가능해야만 미래도 계획할 수 있고 현재 갖고 있는 불만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치가 예측 가능해야만 사회적 불안 요소를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다.

정치적 예측 가능성은 정치적 행위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때만 생긴다. 역으로 정치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예측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

요새 자유한국당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과거에 이미 다 증명이 끝난 얘기를 왜 다시 꺼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주장에 대한 공청회를 했다고 하는데, 왜 새삼스럽게 그 문제를 ‘조명’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으로 이미 결론이 난 문제다.

5·18 광주 민주항쟁은 당시 젊은 나이였던 필자 또래 모든 이에게 매우 어둡고 불행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단순히 어둡고 슬픈 기억이 아니라 전두환 군사 독재에 항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그리고 저항을 위해 급진적 사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었다. 당시 대학생과 정권 저항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했던 전두환 정권은 절대 보수의 일부가 될 수 없다. 정치적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는 정권이다.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킨 잔인하고 끔찍한 역사에 대한 ‘극소수의 시각’을 대변하거나 이런 주장을 ‘다양한 의견 혹은 해석’으로 치부하는 정당이 있다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보수층은 그런 정당을 외면할 것이다. 이뿐 아니다. ‘비정상적 정권 탈취’ 행위 역시 절대로 보수의 가치일 수 없다.

한국당 같은 보수 정당은 스스로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과거가 보수로 포장되는 것을 앞장서 막아야 한다.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으로 결론지어진 슬프고 끔찍한 역사에 대해 확실한 선 긋기를 보여줘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확실한 선 긋기를 하지 못한다면 자유한국당은 여러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첫째, 모든 선거는 중도를 흡수하는 쪽이 승리한다. 이런 사안에 선 긋기를 하지 못하면 중도나 합리적 보수층을 흡수할 수 없다. 결국 총선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둘째, 정치란 사회적 갈등을 축소해야만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이미 확실히 결론이 난 잔인하고 끔찍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면 지역 갈등이 다시 살아나고 공당으로서의 자유한국당 존재 가치는 훼손된다. 셋째, 이런 사안에 선 긋기를 제대로 못 하면 여당에 대한 공격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자유한국당은 여당의 과거 사안에 대한 적폐 청산을 정치 보복이라 규정하며 공격한다. 그런데 한국당 역시 5·18 광주 민주항쟁 같은 과거사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방관한다면 적폐 청산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넷째,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전두환 일당을 역사적, 정치적으로 단죄한 정권은 정통성 있는 보수 정권인 김영삼 정권이었다. 이런 결론을 무시하는 행위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행위다.

종합해볼 때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사안에 대한 확실한 선 긋기는 필수적이다.

자유한국당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또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나오는 이른바 ‘박심(朴心)’ 논란이다.

박심 논란의 시작은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을 맡았던 유영하 변호사의 ‘전언(傳言)’에서 비롯됐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황교안 전 총리 접견을 거부한 사실을 언급하며, 박 전 대통령이 이번 한국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황 전 총리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식의 언급을 했다. 이후 한국당 전당대회는 소용돌이에 빠졌다. 급기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런 정당에서 전당대회 출마는 의미가 없다며 출마 포기 선언을 했다. 이를 보면 한국당 체질이 아직도 상당히 허약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한국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역할과 존재 의미는 막강하다. 그런 차원에서 박심 논란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당에서 당 전체를 아우르고 이끌어나갈 인물이 존재했다면, 박심 논란이 이토록 큰 파장을 몰고 오지는 않았을 터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박심 논란의 파장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당에서 아직도 박 전 대통령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태라면 한국당은 탄핵 논란과 친박과 비박 사이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국민은 한국당이 아직도 이토록 허약 체질이라는 사실에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없다.

여당 역시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하는 공화정’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에 의한 통치’는 민주주의의 구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헌법을 고칠 때 국민 투표로 결정한다는 것도 법치와 민주주의의 불가분 관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재판 결과를 두고 ‘사법적폐청산’을 외치는 여당을 보면서 상당수 국민이 어리둥절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식으로 집권 여당이 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면 결국 자신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확률이 높다. 집권 여당이라면 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여 시스템에 의한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나서 ‘적폐’라는 이름으로 제도에 대한 신뢰를 낮추고 있으니, 여기서 파생될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겠다는 것인지. 여당의 이런 ‘자해 행위’에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없다.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문제도 그렇다. 문재인 정권이 예타 면제 문제를 꺼내 들었을 때, 내용을 아는 국민은 정말 어리둥절해했다. 이명박 정권을 비롯한 과거 정권을 ‘토목정부’라며 그토록 몰아세웠던 현 정권이, 스스로 토목정부로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민단체들이 “예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거름망인데 정부가 내년 총선을 위해 정무적 판단으로 예타를 대거 면제한 것은 초법적·위법적·불법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예타 문제는 김경수 지사 판결에 대한 여당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법치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남이 하면 문제지만, 자신들이 하면 괜찮은 ‘내로남불’의 극치라는 비판도 듣게 생겼다.

국민을 가장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한 말이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월 10일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해 “모든 경제 주체들이 합심해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고 수출 6000억달러를 돌파했다. 국가신용등급 또한 역대 최고 수준이며, 외환보유액 역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취업자 증가세가 둔화 중이고 고령화 등의 여파로 소득 분배 또한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는 우려를 피력하며 “잠재성장률도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대외경제 리스크 역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지만, 이런 조 의장의 말을 듣는 국민은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없다. ‘놀라운 경제적 성과’를 이룩했다고 주장하면서 뒤에서는 ‘놀라운 경제적 성과’가 아니라 ‘놀라운 경제 실패’를 언급하고 있으니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이렇듯 우리 정치는 여야가 합심해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미래를 계획할 수도, 자신들의 불만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도 없다. 정치란 불만의 해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줘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볼 때, 우리나라 정치는 ‘자신들을 위로’하기 위한 존재로 전락한 것 같다. 국민은 빠지고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한국 정치, 그 체질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6호 (2019.02.20~2019.02.2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