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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오키프 명작 훼손해온 유화 표면 미세 돌출부는 "여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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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구팀, 돌출부 쉽게 찾는 휴대용 장비 개발…거작 보존 길 찾아

연합뉴스

오키프 작품 '페데르날(Pedernal)'을 확대한 장면 속의 작은 돌출부
[데일 크론크라이트/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20세기 미국 미술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던 여류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남긴 거의 모든 유화 작품에는 표면에 기포처럼 미세하게 돌출된 것들이 있다. 이 작은 돌출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커지고 주변으로 퍼지다가 끝내 터져버려 거작을 훼손해 미술계에서는 큰 걱정거리가 돼왔다.

한때 오키프가 생전에 살며 그림을 그렸던 뉴멕시코주 사막의 모래가 원인일 것이라는 추정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18일 노스웨스턴 대학에 따르면 이 대학 매코믹 공과대학원의 마크 월튼 연구 교수가 이끄는 학제 간 연구팀은 최근 연구를 통해 이를 여드름과 같은 유화의 질병으로 진단했다. 유화에서 고착제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지방산과 금속이온의 화학작용으로 생성된 '금속비누(metal soap)'라는 것이다.

월튼 교수는 "물감 고착제의 유리지방산이 납과 아연 안료와 작용하고, 이런 금속비누들이 모여 표면으로 돌출해 여드름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런 연구결과를 토대로 유화의 돌출부를 쉽게 찾아내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소형 장비까지 개발했다. 이를 통해 돌출부를 면밀히 추적 관찰해 돌출부가 커지고, 확산하는 환경에 대한 이해를 넓힘으로써 미술품 훼손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오키프의 작품은 그간 습도와 온도, 빛 등 지난 수십년간의 전시환경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어 앞으로 금속비누 돌출부가 심각한 작품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이 개발한 장비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에서 이미 이용되고 있는 평범한 카메라와 디스플레이 등을 이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유화 표면을 빛으로 스캔하고 반사되는 빛을 분석해 초정밀 3차원 측량을 하며, 앱을 이용해 붓의 터치나 캔버스 섬유에 의한 것이 아닌 돌출 부위를 가려낸다.

매코믹 공과대학원 컴퓨터과학과의 올리버 코세어트 부교수는 이를 공상과학 시리즈 '스타트렉'에서 휴대용 진단장치로 나오는 '트라이코더(Tricorder)'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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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프 작품 '리츠 타워'의 표면을 휴대용 장치로 측정 중이다.
[노스웨스턴 대학 제공]



그는 금속비누에 의한 돌출을 아주 낮은 비용으로 측정하고 추적할 수 있으면 보존처리 전문가들이 유화 작품의 상태를 진단하고 대책을 세우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금속비누로 생성된 돌출부는 초기에는 1천분의 1㎜로 자외선으로 비춰봐야 확인될 정도로 작아 진단 자체가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보존처리 전문가들이 뒤늦게 심각하게 손상된 부위를 복원해보기도 하지만 돌출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반사율 변환 이미지(RTI)' 기술을 통해 유화 표면을 측정하려면 조명장치가 된 거대한 돔이 필요하며, 이런 시설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미술관이 몇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튼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가 오키프 작품을 넘어 비슷한 증상을 겪는 다른 작품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우리의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들을 위해 보존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를 워싱턴 D.C.에서 16,17일 열린 미국과학진흥회(AAAS) 연례 회의에서 공개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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