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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편집장 레터] 공간이 혁신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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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자넬리아 팜 연구캠퍼스 같은 기초과학연구원을 만들 계획입니다.” 2011년 당시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미국 자넬리아 팜을 둘러본 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며 이 같은 얘길 한 후 자넬리아 팜은 선진 R&D 기관 탐방과 벤치마킹을 얘기할 때 늘 1순위로 거론되는 곳 중 하나가 됐습니다.

기억 속 한 켠으로 물러나 있던 자넬리아 팜이 최근 출간된 ‘플라이룸’이라는 책과 함께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캐나다에서 초파리를 연구하는 김우재 박사의 책은 자넬리아 팜 얘기로 시작됩니다. ‘한 지붕 아래에서 생물학자, 물리학자, 엔지니어, 화학자가 함께 일하면서 시너지를 내고 엉뚱한 공동연구를 촉발하는’ 자넬리아 팜에 대한 부러움이 단어 하나하나에까지 가득 배어 있습니다.

‘자넬리아 연구소 1층엔 커다란 술집이 밤늦게까지 영업하고 있다. 연구소 내부에 술집이 있고, 그 술집에서 과학자들은 밤늦게까지 술도 마시고, 스포츠 중계도 관람하고, 공동연구 주제를 토론하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는 문장으로 자넬리아 팜의 분위기를 정리한 김 박사는 “점심시간의 티타임이 앞서가는 연구의 기틀이 됐다는 전설이 많다”고 덧붙입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로 판교를 준비하면서 자넬리아 팜을 떠올렸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R&D 밸리로 떠오른 판교가 한국의 자넬리아 팜 같은 곳이 될 수는 없을까 생각이 들었죠.

실상은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판교에 들어와 있는 모 연구기관은 꽤 고가의 실험장비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기관과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면 기기 활용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연결고리로 서로 활발하게 협업하고 교류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연구진 간의 소통을 창출할 만한 대화의 공간이 마땅치 않은 것도 한 요인일 겁니다.

경기도는 판교 땅을 기업들에 저렴한 가격에 분양하면서 상업시설 입점을 금지했습니다. 술집은 언감생심. 기업 입주 건물에 카페가 들어가는 것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물론 카페가 있기는 합니다. 일종의 구내 카페지요. 외부인이 이 카페를 이용하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불법입니다. 자체 사옥을 갖고 있는 대기업이나 조금 형편이 나은 기업들은 자사 내에 카페를 비롯한 다양한 휴게공간을 갖추긴 했지만 모두 자기 직원만을 위한 것입니다. 어디에서도 협업과 교류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림같이 정돈된 판교밸리의 풍경이 첫눈에 멋져 보이기는 하지만, 그건 그저 외관만이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서는 비록 엉뚱한 얘기일지언정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섞이고 흘러 다녔으면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새로 들어서는 2차, 3차 판교테크노밸리는 조금 더 열린 구조로 조성되면 좋겠습니다. 공간이 생각지 못한 혁신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요.

[김소연 부장 sky659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6호 (2019.02.20~2019.02.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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