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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안에선 노조, 밖에선 신사업 규제…판교 역동성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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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교밸리 24시 ◆

매일경제

판교는 팽창중
올해 하반기 본격 개장 예정인 판교 2테크노밸리의 토지 조성 공사 현장. 이곳이 문을 열면 판교에는 1테크노밸리와 합해 모두 2000여 개 기업에서 10만명가량이 일하는 공간이 조성된다. [판교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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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벤처기업들의 모범이었던 네이버가 노조를 설립한다는 소식이 최근 저희에게도 큰 화두 중 하나죠."(판교 소재 중견 IT 기업 관계자)

국내 토종 벤처기업에서 출발해 벌써 20주년을 맞이하는 네이버가 오는 20일 첫 쟁의행위를 겪게 된 것은 판교에서 큰 화젯거리다. 네이버 노조는 지난해 4월 결성된 이후 회사 측에 다양한 주장을 펼쳐왔으나 최근 사측과 협상이 결렬됐다. 지난해 9월 판교에 위치한 게임 회사인 넥슨과 스마일게이트가 차례로 노조를 설립하고 카카오도 이어 노조를 설립하면서 판교의 분위기는 일촉즉발이다.

최근 판교의 기업 분위기는 노사 문제를 비롯해 인력 유출, 규제 이슈 등으로 좋지만은 않다. 특히 노사 문제는 노동자와 사용자 양측 간 문화적 시각 차이가 커 향후 판교를 두고두고 괴롭힐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자들은 이른바 판교 '오징어잡이 배'라고 불리던 정보기술(IT), 게임 업계에 노조 설립이 시작된 것은 하나의 시대적 흐름과 같다고 보는 입장이다. 신작 서비스 출시 직전에 '바짝' 일하는 기간을 뜻하는 소위 '크런치 모드' 때문에 시작된 노조 설립 움직임은 한발 앞당겨졌다. 수평적이던 회사가 수직적으로 변해가면서 쌓인 것들이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라는 것이다.

경영자들도 스타트업이던 회사가 'IT 공룡'으로 성장하면서 문제가 생겼다는 입장에 공감하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2012년 사내 강연에서 "사내 게시판에서 '삼성에서 일하다가 편하게 지내려고 NHN으로 왔다'는 글을 보고 너무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졌다"며 "회사를 '동네 조기축구 동호회'쯤으로 알고 다니는 직원이 적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이해진 GIO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네이버의 사업을 해외로 넓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결국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커진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노사 양측이 적절하게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판교의 노사 관계 현실인 것이다.

이는 사측이 아무리 복지를 늘려도 인력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보면 명백해진다. 판교 소재 한 IT 회사 관계자는 "페이스북 같은 경우 해외에서 근무지를 정하고 이후 본사로 영입하는 제도 등 직원들의 선택폭이 매우 넓다"며 "이들 업체와 비교하면 사실 국내 기업들의 혜택이 적어 보일 수 있지만, 파격적인 조건임에도 인력 유출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내 개발자를 집중적으로 뽑는 곳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있다.

판교 소재 IT 기업들의 사내 복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말 세 번째 직장어린이집을 설립했는데 세 곳을 합하면 정원이 752명으로 국내 IT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게임 업체 넷마블은 장기근속 휴가 제도를 손봐서 휴가지원금으로 최대 1000만원을 주고 있다. NHN엔터테인먼트는 하루 8시간 근무를 4~10시간으로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고, 넥슨은 직원이 아픈 가족을 돌보기 위해 휴직하면 생활안정자금 450만원을 지원한다.

네이버는 내년부터 모든 직원에게 매년 1000만원 상당의 스톡옵션을 지급하기로 했고, 카카오는 지난해 3월부터 단계적으로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주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출시 게임 성과에 따라 최고경영자(CEO)가 특별격려금을 전사 임직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설립 움직임은 커지고 있고, 인력 유출 때문에 관리자들이 불안해하는 현실이 판교에 드리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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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대한 피로감도 판교를 짓누르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통과됐지만 블록체인 등과 관련한 해외 송금 규제가 여전하다.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처럼 기업들이 자유롭게 혁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다. 17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은 청와대가 페이스북에 게시한 인터뷰 영상에서 '이번 규제 샌드박스 선정에 점수를 얼마나 주겠는가'라는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기대에 비하면 사실 좀 미흡하다"고 답했다. 그는 "규제 샌드박스 신청 사업 수에 비해 통과된 사업 수가 적다"며 "실제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원인은 이보다 더 자잘한 규제들이며 깨알 같은 규제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우버와 그랩 등을 통해 보편화된 카풀 서비스도 국내에선 규제에 가로막혔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카풀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등 택시 관련 4개 단체는 지난해 11월부터 여의도 국회, 광화문광장은 물론이고 카카오모빌리티 판교 사옥 앞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네이버는 최근 해외에서 핀테크 사업을 벌이고 있다. 카카오는 카풀 서비스로 택시 업계와 마찰을 빚고 있는 데다 증권사 인수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정주 넥슨 대표 역시 게임 규제에 대해 중독은 문제지만 근본 대책은 따로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넥슨이 게임 사업 매각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국내 게임 업계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판교 =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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