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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과감한 크로스오버, 형식 파괴…대관령에 음악의 활기 불어넣은 손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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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 대관령겨울음악제 예술감독 인터뷰

폐막작 음악극 ‘겨울나그네’서 직접 연주

기획·섭외 연주에 곡 해설 ‘1인4역’

“긍정 마인드·호기심이 실험의 동력”

“지금까지 안 쳤던 베토벤에 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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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꿈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간만에 얻은 쉼 일테니/ 내 발걸음이 들리지 않도록/ 조용, 조용히 문을 닫고 떠날게/ 떠나며 그저 문에 손가락으로 인사를 남겨/ 네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떠나는 순간까지 내가 널, 생각했다는걸”(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중 1곡 밤인사’)

24곡으로 이뤄진 가곡 ‘겨울나그네’는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 연작시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사랑을 잃은 청년이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떠나는 이야기로, 원래 이름은 ‘겨울여행’이었으나 한국에서는 잘못 번역돼 ‘겨울나그네’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다.

지난 15일 저녁 눈 덮인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대관령겨울음악제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음악극 <겨울. 나그네>는 실연의 고통을 겪는 청년의 슬픔과 외로움을 음악과 춤으로 절절하게 풀어낸 무대였다. 24곡 중 18곡이 단조인데 장조에서도 우울한 분위기가 뚝뚝 묻어나는 피아노 선율에 맞춰 무용가 김설진(38)은 뭉크의 ‘절규’처럼 얼굴을 구긴 채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피아니스트이자 대관령겨울음악제(여름엔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인 손열음(33)은 청년의 마음을 음표로 읽어내듯 차분한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공연이 끝난 뒤 깊은 밤에 만난 손 감독은 “리허설 때 잠깐 보긴 했지만 (성악가와 무용가를) 등지고 피아노를 치느라 정작 제대로 된 공연을 못 봤다. 어떻게 보셨냐”며 궁금하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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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감독은 지난해 3월 음악제 예술감독에 선임됐다. 지난 여름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이어 첫 겨울음악제인 대관령겨울음악제까지 이제 한 사이클을 끝냈다. 기억에 남는 공연을 묻자 “여름음악제에선 세계 유명 악단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이다. 모이기도 힘든데 연주까지 잘 해줘 감격스러웠다. 겨울음악제에선 오늘 새롭게 첫선을 보인 음악극 <겨울. 나그네>가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통클래식 음악제인 여름에 견줘 겨울은 라이트 클래식, 크로스오버 등 종합예술음악제의 색채를 띠었다. 손 감독은 “올해는 티켓 오픈 일정이 늦었음에도 관객들이 많이 찾아주셨다. (12명의 연주자가 참여한) 서울에서의 개막공연 반응이 좋았고, 김연아씨가 선수 시절 사용한 음악들을 선보인 <소녀, 여왕이 되다>(강릉)는 매진되기도 했다”며 성과를 설명했다.

손 감독이 예술감독으로서 하는 역할은 다양하다. 기획, 섭외, 연주(겨울음악제에선 4번 공연)는 물론이고 프로그램북에 들어갈 곡해설도 직접 쓴다. “프로그램북은 책에 애착이 있기도 하고 나중에 들춰보며 회상할 수도 있어서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음악은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에 불친절하게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 느낌을 프로그램북으로 해소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손 감독이 꾸려가는 음악제는 젊고 신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능할까 싶은 시도들을 할 수 있는 용기의 비결을 묻자 그는 자신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꼽았다. “‘시도’라는 말은 되든 말든 일단 하는 것이란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렇게 끝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전 용기가 있진 않은데 겁은 없는 것 같고요, 부정적인 생각은 없는 긍정적인 사람이고요. 그래서 음악회를 구상할 때 좋은 연주자들이니까 잘해주겠지 하고 맡겨 버려요.(웃음)”

피아노 앞에서 무섭게 집중하는 모습과 달리 무대 아래에선 한없이 유쾌한 손 감독은 다방면에 소질을 가진 팔방미인이다. 신문사 칼럼 연재를 묶어 책을 낼만큼 글솜씨가 좋고, 직접 공연기획사를 차려 공연 기획도 하고 있다. 음악제 예술감독 외에도 지난해 7월부터 <티브이(TV)예술무대>(문화방송) 진행도 맡고 있다. 이렇게 연주자의 삶에만 갇히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호기심” 때문이다. “배우는 것을 좋아해요. 새로운 것을 해보려는 호기심이 있어요. 요즘은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호기심에 비해 활동에너지가 많이 떨어진 것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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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맡은 음악제 예술감독 일은 힘들지만 배우는 게 많다. “이기적으로 말하면 음악적으로 공부가 많이 됐어요. 프로그램북 쓰는 건 알고 있는 걸 다시 끄집어내 씹는 거니까요. ‘겨울나그네’도 어릴 때부터 알던 거지만 가사 하나하나를 꿰뚫진 않았는데 이번 공연을 하며 공부가 됐죠. 저 혼자 치는 피아노와 달리 가사 있는 음악을 전달해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취향을 다시 짚어보는 계기도 된 것 같아요.”

겨울음악제가 끝나고 나니 이제 개인 연주 스케줄이 줄줄이 남았다. 올해는 국내보다 스위스(3월), 영국(4월) 등 주로 해외 공연이 빽빽하게 잡혀있다. “연주자도 누가 불러줘야 무대 설 기회가 있잖아요. 4~5년 전 유럽에서 주로 활동할 때 매니저도 못 찾고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되든 말든 있어 보자 하고 버텼더니 다시 잘 풀리더라고요. (연주자의 삶에 대한) 불안감이 컸는데 요즘은 편안해졌어요. 예전엔 큰 무대에 서고 싶었다면 요즘은 안 그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이 열명이어도 좋고. 심지어 혼자만 해도 좋다는 생각도 하고요.”

바쁜 생활이 이어지면서 사생활이 없어지니 또다시 일 생각만 하게 된다는 그는 “감정 상태나 영감이 메마르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주자의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서 관심있는 작곡가도 변했다. 모차르트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베토벤에 끌린다.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베토벤의 음악은 클라스가 다른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안 친 게 잘한 것 같고, 미지의 세계를 남겨둔 느낌이 나서 앞으로도 계속 시도해보고 싶어요.”

강원도의 추운 날씨에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그와 헤어지기 전 요즘 빠져있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딴짓을 뭐할까 고민하는 데 빠져있다”며 웃었다. “안 그렇게들 보시는데 연주 외에 딴 생각, 딴짓도 많이 해요. 음악제 끝났으니 일본 오키나와에 일주일간 놀러 가려고요. 핸드폰도 꺼놓을 거예요. 하하”



손열음은 누구?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1986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2009년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준우승했고,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도 준우승과 함께 모차르트 협주곡 최고연주상, 콩쿠르 위촉작품 최고연주상까지 휩쓸며 주목받았다. 로린 마젤, 드미트리 키타옌코,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의 지휘자와 함께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연주 실력 못지 않은 글솜씨로 5년간 기고했던 칼럼을 모아 에세이집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2015)를 출간하기도 했다.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한 뒤 지난해 3월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으로 위촉되어 음악제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음악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간직한 ‘현재진행형’의 연주자이길 꿈꾼다.

평창/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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