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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개 풀어달랬더니 13개만 유전자검사 허용"...'규제 샌드박스' 해도 규제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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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 1호’에 유전체 분석 건강 서비스(DTC)’ 사업을 포함하면서 유전자검사 서비스 규제 빗장이 풀렸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정작 업계 내부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규제 샌드박스란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때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일정기간 없애주는 것으로, 실증 특례와 임시 허가를 주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규제 샌드박스 1호 선정이 사업 현장에 새로운 시도와 혁신이 일어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반면, 업계는 국내 산업 성장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이다.

12일 조선비즈가 주요 유전자분석 서비스 관련 기업 및 스타트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이번 규제 샌드박스 선정을 놓고 업계와 정부 간 온도 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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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콘퍼런스룸에서 제1차 산업융합 규제특례 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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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제1차 산업 융합 규제특례심의회를 열고 소비자 직접의뢰 유전자검사(이하 DTC) 유전체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를 비롯한 4개 안건을 ‘규제 샌드박스’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유전체 분석 기반 기업 마크로젠(038290)이 15개 분야의 DTC 유전자검사 항목 확대를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규제특위는 기존 12개 유전자검사 항목에 고혈압, 뇌졸중, 대장암, 위암, 파킨슨병 등 13개 질환에 대한 유전자검사 실증을 허용했다. 마크로젠은 우선 인천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2년간 실증 사업을 추진해 유전체 검사와 질병 사이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게 된다.

◇ 13개 항목 허용해줘도 포지티브규제 한계 여전

정부의 규제 혁신 신호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여전히 정부의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는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DTC(Direct-to-Consumer) 유전자검사 서비스는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고 소비자 개인이 직접 유전자검사를 의뢰할 수 있는 서비스다. 혈액이나 타액 표본을 담아 보내면 조상이 누구인지 밝혀주고, 발병 가능성이 높은 질환을 예측해준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DTC 서비스 사업 분야에 진출해있는 국내 업체로는 마크로젠(038290), 테라젠이텍스(066700), 랩지노믹스(084650), 디엔에이링크(127120), 제노플랜, EDGC, 마이지놈박스, 바이오니아 등 약 19곳으로 추산됐다.

19개 기업 중 한 곳인 A사 측 관계자는 "이번 규제샌드박스 효과를 업계가 체감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항목만 허용하는 식의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 아니라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 다 허용해주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요구해왔는데 이러한 대전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6년 정부는 12개 항목(체질량지수, 중성지방농도,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색소침착, 탈모, 모발굵기, 노화, 피부탄력, 비타민C농도, 카페인대사)의 경우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고도 소비자 개인이 직접 유전자검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DTC 시장을 허용했다. 그동안 업계는 12개 검사 항목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불만을 제기해왔다.

작년 12월, 업계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본회의에서 유전자 검사 항목이 현 12개에서 120여개로 확대하는 안에 대한 권고가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유전자검사 서비스의 질을 관리감독하라는 인증제 도입 과제만 떠안았다. 이후 산업부가 이번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DTC 유전자검사 허용 항목을 기존보다 추가한 것이다.

또다른 B사 관계자는 "일례로 비타민A, B, C, D 중에서 현재 DTC 유전자검사가 허용되는 항목은 비타민C 뿐"이라면서 "DTC 서비스 만으로는 사업이 커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업체들은 DTC사업을 영양학적 분석과 대안 제시, 약 처방 등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지금처럼 한정된 허용 항목 안에서는 소비자에게 다양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업모델로 연결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C사 관계자는 "규제 완화는 산업군 전반의 요구인데 이번 규제샌드박스는 1위 업체에게 먼저 시장 확대 기회를 갖게 하는 꼴"이라며 불만섞인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 "규제 푼다고 시장 커지는 것 아냐"…DTC산업 한계 넘어야

DTC 유전자검사 서비스 사업이 규제 혁신의 첫발을 뗐다고 하지만, 넘어야 할 과제는 많다.

국내에서 DTC사업에 뛰어든 기업이 약 19곳이나 생겨났지만 대체로 사업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업계에 따르면 DTC 서비스 사업으로 약 10억원대 연간 매출을 거둔 테라젠이텍스와 마크로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매출이 1억원 이하로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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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DTC 시장이 거의 형성이 안 돼있다고 보면 된다"며 "2010년대 초반에는 우리도 소비자가 직접 편의점에서 DTC 유전자검사를 구매해 이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왔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게 흘러갔고 현 시장에서 성장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쓰리빌리언은 인공지능(AI) 기반 희귀질환 유전자 진단 스타트업으로, 창업자인 금창원 대표는 일찌감치 국내가 아닌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또 이 회사는 DTC 서비스가 아닌 유전체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5000여종의 희귀 유전질환을 한번에 진단하는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금창원 쓰리빌리언 대표는 "규제를 푼다고 해서 시장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DTC 사업 분야는 미국 외엔 성장한 나라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소비자가 갖고 있는 문제를 명확하게 풀어주는 솔루션으로 발전하는 게 중요한데, 이런 측면에서 DTC 유전자검사 서비스는 한계를 지닌다"고 말했다.

즉, DTC검사가 소비자에게 명확한 이익이나 실질적 변화까지 가져오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 국내 업체들이 벤치마킹하는 미국 DTC업체의 경우 인종적 뿌리 찾기(조상 찾기, 조상 분석) 서비스를 시작으로 성장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있는 미국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미국 DTC 시장 업계 1위 업체인 앤세스트리디엔에이(AncestryDNA)는 유전자검사를 통해 조상을 분석해주는 서비스 사업으로 연매출 1조원을 거둔다. 이 회사는 DTC유전자검사로 이용자의 조상을 분석해주는 서비스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사업을 연계했다.

소비자는 유전자분석을 통해 조상의 국적, 생김새 등을 알 수 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SNS 플랫폼에서 자신의 유전적인 친척을 찾을 수 있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이 유전적으로 6촌, 8촌 친척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회사의 매출의 50%는 소비자가 DTC검사 이용 후에 지불하는 SNS 구독료에서 나온다.

23앤미(23&ME)도 조상 분석 서비스를 시작으로 질병에 대한 유전자검사 서비스를 확대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가 조상분석 서비스 이용 10만건을 돌파하기까지 약 5년이 걸렸다.

랩지노믹스 관계자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DTC 서비스르 더 많이 판매 해보려고 한다"며 "동남아시아, 미국, 중국 등 다른나라에서 유전체정보의 상업적 활용 여지가 국내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금창원 대표는 "DTC 유전자검사 항목 규제만 푼다고 사업이 성장하는 게 아니다"라며 "DTC 유전자검사가 갖는 한계를 넘어 소비자의 니즈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솔루션, 제품으로 발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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