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김동춘 칼럼] 사람도 없는데 철도만 깔면 뭐 하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망국적 입시전쟁, 주거 빈곤 등도 20년 동안 국가 ‘비상사태’였으며 수도권과 지방 모두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정말 긴급한 과제이나 이런 사안은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긴급조치’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사태는 악화되는 중이다.

한겨레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정부는 국토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22개 사업 약 20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의 혁신클러스터 조성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도 이명박 정부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추진했던 개발주의 기조의 사업에 예타 면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한다.

‘예타’ 면제는 일종의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긴급조치다. 국가적으로 긴급하게 요구되는 사업에 대해 경제성과 절차를 생략하고 추진하는 일종의 정치적 결정이다.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는 긴급조치를 취해야 할 영역은 맞다. 그런데 지역 붕괴만이 비상사태이고 긴급조치의 대상일까? 저출산·고령화, 망국적 입시전쟁, 높은 자살률, 주거 빈곤 등도 20년 동안의 국가 ‘비상사태’였으며 수도권과 지방 모두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정말 긴급한 과제이나, 이런 사안은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긴급조치’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사태는 악화되는 중이다. 즉 지역의 붕괴는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국가의 지속가능성 문제, 수도권의 삶의 질 저하와 사실은 같은 현상이다. 재벌 밀어주고, 서울 집값 지켜주고, 수도권 중요 대학 더 밀어준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철도, 공항과 도로 건설 예타를 면제하면 지역 균형발전이 이루어질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쏟아부은 돈은 어디에 사는 누구에게 갔고, 어느 정도의 지역 고용을 창출했을까?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과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여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였는가? 텅 빈 공항,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는 정책이 없이 지방의 발전이 가능할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역의 붕괴는 수도권으로 돈과 사람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가히 청년 엑소더스라 부를 만한 현상이 20년째 진행 중이다. 일자리와 교육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공공서비스와 문화 불균형도 엑소더스의 중요 요인이다. 고속철과 도로가 깔리면 서울 사람들이 지방에 내려가기에 편해질 따름이지, 지방의 중소 병원, 백화점, 가게는 문을 닫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더불어 시작된 서울 부동산 폭등으로 지역사회의 돈 있는 사람들이 서울 아파트 사재기에 나섰기 때문에 지방의 돈줄은 더 말랐다.

즉 수백조원의 지방 돈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갔고, 일자리는 거의 수도권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타 면제 20조원이라는 돈을 지방에 쏟아부어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공기업 지방 이전은 취지는 좋았으나 혁신도시에는 아파트만 논바닥 위에 덩그러니 서 있다. 지금 한국의 지역사회는 청년이 살 수 없는 곳이고, 젊은 부부가 애를 낳고 키우기 어려운 곳이다.

지방에서 우수하고 창의적인 인력을 구할 수 있다면 기업들도 내려가지 않을까? 대학과 기업이 혁신산업 중심의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지방의 실업고,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무상으로 혁신 창업교육을 시키고, 이후 취업 때 혜택을 주면 지역 청소년들이 구태여 서울의 대학으로 올라오려 할까? 양질의 공공병원이 있고 귀촌 지원 정책을 펴면 청장년들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까? 한국의 수도권 집중은 주로 교육과 일자리 때문에 생긴 것인데, 교육 문제, 특히 대학의 질적 제고 문제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데 지역사회가 살아날까?

촛불의 힘에 의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부와는 질적으로 다른 지역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들의 실망이 크다. 지역의 균형발전을 개발주의 토건경제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국가를 새롭게 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돈과 사람의 수도권 유입을 사실상 조장하는 정책을 펴고서 균형발전을 말하는 것은 더욱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사업에 예타 면제를 하는 것은 소신 있는 공무원과 전문가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당장의 선거에서는 득을 볼지 모르나, 더 큰 짐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후과는 바로 정치권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다. 그리고 토건사업은 반드시 심각한 부패, 막대한 거래비용, 갈등처리 비용을 낳는다.

청년들이 지방으로 내려가도록 하는 정책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 혁신 중소기업 지원, 높은 수준의 지역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 육성, 산학 연계, 좋은 공공인프라 구축 없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엑소더스는 계속될 것이다.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