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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기고] 내실 없는 ‘통합지상주의’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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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컨벤션 효과’를 누리고 있다. 황교안·홍준표·오세훈 후보가 이달 27일 예정된 전당대회 대표경선에 출마해 주목도가 높아졌다. 때마침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사건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2017년 대선 이후 처음으로 10%포인트 이내로 좁혀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제 당 안팎 보수세력이 한데 모이기만 하면 내년 총선에서 제1당도 될 수 있다고 당권주자들은 역설한다.

그러나 위험한 생각이다. ‘내실(內實)’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로 정권을 내놓은 자유한국당은 우리나라가 의원내각제 국가였으면 ‘궤멸적 타격’이 아니라 사실상 소멸됐을 가능성이 크다. 내각 붕괴와 국회해산에 따른 총선이 바로 이어졌을 때의 결과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현재 의석수(112석) 역시 지지율에 비추어 과잉이다. 그럼에도 깊고 참혹했던 탄핵 상처에 대한 반성과 치유에 게을렀다.

세계일보

유성식 명지대 객원교수


프로스포츠에는 ‘리빌딩(rebuilding)’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몇 시즌 동안 형편없는 성적을 내면 구단은 주전을 유망주와 신인으로 대폭 물갈이하고 감독도 바꾼다. 새 사람과 새 비전은 적응 기간이 필요하기에 대개 다음해 순위보다는 실전 경험에 비중을 둔다. 충격이 클수록 리빌딩 폭이 커지고, 경기력 회복과 성과를 위한 인내의 시간도 길어진다.

자유한국당에는 리빌딩이 없었다. 정당의 리빌딩은 ‘노선 현대화’와 ‘인적 쇄신’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야당이 된 이후 새로운 비전과 전략은 떠오르는 게 없다. 얼마 전 실시된 몇몇 당협위원장 교체 이벤트에서 감동을 느낀 이도 별로 없을 것이다. 늘 들리는 소리는 ‘대여(對與) 투쟁’이었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서도 그렇게 하다가 참패했다. 몸이 만신창이인데 옛날 방식대로 조급하게 덤벼들었다. 투쟁과 통합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 의한, 어떤 가치를 지향한 것이냐이다. ‘그때 그 사람들’의 관성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설득은 말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먼저다. 신뢰가 떨어진 사람들의 메시지를 귀담아들을 사람은 제한적이다. 혁신은 어차피 고통이고 배신이다. 그런 과정 없이 ‘all but 문재인’(문재인만 아니면 돼)만으로 총선에서 이기고 정권을 되찾아오겠다는 것은 기만이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지난해 ‘대한민국 중심정당의 길’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핵심은 중심·주변정당론이다. 요컨대 여야 구도가 중심·주변정당으로 고착되면 정권교체는 중심정당 내에서 이뤄지고 여당은 1.5당이 되는 반면 야당은 수권능력을 상실한 항의정당, 대권 아닌 당권에 집착하는 0.5정당, 불임정당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변정당에 대해 “고정 지지층에 영합하고 진영의 복원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동원력을 극대화하는 존재감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리얼하게 목도되고 있는 광경이다.

자유한국당 당권주자들이 ‘컨벤션 효과’에 취하지 말기를 바란다. 헌신과 희생에 뿌리박지 않은 새 출발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대표가 바뀌면 마음이 떠났던 중도·보수 지지층이 돌아올까. 불편하고 버겁다고 덮어놓으면, 내년 총선을 치르기 전에 내부의 패배 위기에서 비롯된 혼란과 분열의 파도가 당을 덮칠지 모른다.

유성식 명지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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