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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월소득 50만원···수급자보다 더 어려운 삶 사는 93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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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빈곤리포트 <중>

부양의무자 있으면 수급자 제외

정부서 기준 완화했지만 역부족

77세 할머니 월 25만원으로 생활

"연락 끊긴 며느리 재산 있어 탈락"

비수급 빈곤층의 고단한 삶
중앙일보

김정자씨는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해 화병이 났다. 기초연금 25만원으로 산다. 보일러 안 틀고 하루 1시간만 TV를 켠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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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낮 12시 김정자(77·여)씨가 사는 서울 근교 임대 아파트는 오가는 사람으로 제법 북적였다. 주차 차량도 평소보다 많았다. 노모를 휠체어에 앉혀 외출하는 가족, 양손 가득 설 선물을 들고 어린 자식과 아파트에 들어서는 가족도 보였다. 하지만 김씨는 혼자였다. 김씨는 이날 점심을 평소만큼 먹지 못했다. 밥과 김치 반찬이 전부였다. 평소엔 멸치를 우려 국을 만들어 먹는데 이날은 이마저 힘들었다. 겨우 두 숟갈 떠다 그만 먹었다. "딸이 어젯밤 12시까지 일해서 오후에나 온다고 했는데…." 김씨는 경기도 북부에 사는 딸을 기다리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딸도 힘들게 사는데 설이라고 집으로 오라고 한 게 미안하다고 했다.

한 달에 25만원으로 살 수 있을까. 김씨의 수입은 기초연금 25만원이 전부다. 복지관에서 부정기적으로 3만원의 후원금을 줄 때가 있다. 기초수급자 1인 가구 생계비(51만2102원)의 절반이 안 된다. 지난달 21일 김씨는 컴컴한데도 불을 켜지 않았다. 방바닥이 차갑다. 온도를 재보니 14도다. 웬만한 추위가 아니면 보일러·전기장판에 손대지 않는다. 패딩을 입고 양말을 신고 있다. TV는 하루 1시간만 켠다. 세탁기는 안 쓴다. 손빨래로 다 한다. 휴대전화가 없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계란 몇 개, 복지관에서 갖다 준 반찬이 전부다. 몸무게는 40㎏. 목·허리 디스크 증상과 만성 장염 때문에 잠을 깊게 못 잔다. 혈압이 150을 넘은 지 오래다. 귀가 먹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의료비 때문에 병원 진찰은 엄두를 못 낸다. 25만원으로 전기·전화 요금을 내고, 쌀·계란 등을 사려면 TV를 덜 보고 고기 반찬을 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김씨 할머니는 기초수급자일까. 아니다. 소위 '비수급 빈곤층'이다. 기초수급자와 다름없이 가난하지만,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극빈층을 말한다. 김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소득과 재산이 거의 없는 데다 아들·딸의 형편이 어려워 30년 가까이 기초수급자로 지냈다. 그런데 아들과 별거 중인 며느리가 3년 전 친정에서 자그마한 집을 물려받으면서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했다. 소위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린 것이다. 김씨는 “며느리는 재작년부터 아들과 별거 중”이라며 “연락도 없는 며느리의 재산 때문에 탈락한 게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그래픽=조혁 인턴기자]


김씨와 같은 처지의 비수급 빈곤층은 93만명(2015년 기준). 이들은 기초수급자보다 더 어렵게 산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기초생활 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비수급 빈곤가구의 월 평균 가처분소득(세금 등 비소비지출을 공제하고 연금 등 이전소득을 보탠 돈)은 50만~68만1000원이다. 생계·의료·주거급여 등 각종 정부 지원을 받는 기초수급자는 가구당 95만7000원이다.

비수급 빈곤층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이다. 연락을 끊고 살거나 도움을 못 주는 자녀가 있으면 기초수급 혜택을 받기 어렵다. 자격이 되어도 직접 신청하지 않아 지원을 못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달 3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모녀도 비수급 빈곤층이었다. 기초수급 혜택을 받으려면 본인이나 주변인이 직접 신청해야 한다. 본인과 가족의 소득·재산 파악을 위해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모녀는 신청하지 않았다. 비수급 빈곤층 하모(여·83)씨는 “주민센터에 가서 기초수급 대상자로 신청하는 절차나 과정이 부담스러워 가지 않고 있다”며 “자식의 재산·직업까지 조회해야 하는데 부담 주기 싫어 앞으로도 신청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용케 기초수급자가 돼도 자녀의 살림살이를 따져 조금이라도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단(부양 미약자)하면 부모의 생계지원금을 삭감한다. 자녀의 부양 능력을 따지지 않을 수는 없지만, 너무 깐깐하다 보니 자녀도 덩달아 가난해지고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와 자녀 양 쪽 다 가난한데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다 보면 자기 노후를 준비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떵떵거리며 잘 사는 자식이 부모를 팽개친 경우도 있겠지만, 자식도 진짜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빈곤 대물림을 끊는 근본적 해결책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수급자 4개 급여 중 교육비·주거비 대상자 선정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보지 않는다. 현 정부 들어 폐지했다. 또 생계비·의료비 대상자를 정할 때 부양의무자 기준을 일부 완화했지만, 부양의무자 가구가 소득 하위 70%이면서 노인·중증장애인일 경우에만 그리했다. 정부는 생계비·의료급여의 부양의무 기준 폐지에 연 6조~7조원이 들어 난색을 보인다. 또 효 사상을 해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비수급 빈곤층과 기초수급자를 양자택일해 복지 혜택을 줄 문제가 아니다”라며 “기초수급자의 지원을 강화하되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 비수급 빈곤층까지 포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62% "계층 상승 못해"…4년전보다 15%P 늘었다
중앙일보

[그래픽=조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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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이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에 실린 ‘청년층의 주관적 계층의식과 계층이동 가능성 영향요인 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30세 미만 청년 약 1만 명 중 61.5%가 계층 이동 가능성이 작다고 답했다. 2013년(46.8%)보다 14.7%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매우 높다’와 ‘비교적 높다’로 본 비율은 3.7%포인트, 10.8%포인트 줄었다.

계층 상승 요인으로 부모의 경제적 자원이 꼽혔다. 부모의 월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청년보다 400만~500만원인 가구의 청년은 계층 상승 가능성이 3.09배, 500만~700만원은 3.15배 높게 본다. 이용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부모의 자원이 계층을 결정한다는 ‘수저 계급론’이 존재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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