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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광주형 일자리 경형 SUV 만들면, 기아차로 불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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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광주 물량 확보하려면

경차 1위 기아차 몫 가져와야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31일 완성차 합작공장 설립을 위한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광주형 일자리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업 모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최대주주, 민간기업이 2대 주주 자격으로 공장을 세우고,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낮추는 대신 일자리를 늘린다. 이 과정에서 정부·지방자치단체는 근로자의 주거·복지 등을 지원해 낮은 임금을 보전한다. 독특한 경영 방식을 도입하지만, 이윤을 남겨야 하는 기업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핵심 비즈니스인 자동차 생산·판매가 원활해야 광주형 일자리도 지속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일단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도입하는 광주 공장에서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코드명 QX)’을 생산하기로 했다. 신설법인은 광주 빛그린산업단지 62만8099㎡ 부지에서 내수용 경형 SUV를 매년 7만~10만 대씩 생산할 계획이다. <중앙일보 2018년 6월 4일자 B1면>

문제는 시장 규모다. 지난해 국내서 팔린 경차급 차종은 총 4종, 모두 12만7429대다. 지난해 시장 규모가 2021년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 국내 경차 판매량의 80%를 현대차가 가져와야 광주형 일자리 공장의 생산량이 시장 수요를 맞출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되더라도 문제다. 지난해 경차 시장의 67.5%를 형제 브랜드 기아차(모닝·레이)가 점유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국내 경차 시장을 뺏어오는 만큼 기아차 경차 판매량이 감소하는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신제품이 기존 주력제품 시장을 잠식하는 판매 간섭 현상)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다른 완성차 제조사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내수 시장(154만5604대)이 17년 전(162만2269대·2002년)보다도 위축된 상황에서 국내 공장이 하나 더 설립되면 자사 판매량이 영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내수 판매량의 절반(42.8%·2164대)이 경차(스파크)였던 한국GM 입장에서는 상당한 타격을 우려한다. 이미 내수 판매량이 국산차 꼴찌로 추락한 상황에서 현대차가 경차 시장에 진출하면 한국GM 판매량은 더욱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현대차는 당장 6~7월경 신형 소형 SUV를 울산공장에서 생산한다. 2017년 6월 출시한 소형 SUV(코나)보다 약간 크기가 작지만 배기량(1600㏄)은 비슷한 소형 SUV(베뉴)다. 기아차가 판매하는 소형 SUV(스토닉)와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차종이다.

현대차그룹이 소형 SUV 라인업에 3개의 완전변경 신차(코나·스토닉·베뉴)를 투입하면, 상대적으로 경형 SUV 시장은 위축할 가능성이 있다. 가격대가 비슷할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 차량을 선택할 때 경쟁 모델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광주 공장에서 생산하는 경형 SUV는 1000㏄ 미만이기 때문에 소형 SUV와 소비자층이 겹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국내 경차급 시장 규모를 키우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의 명운을 좌우할 전망이다. 현대차는 이른바 ‘코나 모델’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2013년 9215대 수준이던 국내 소형 SUV 시장은 지난해 시장 규모가 15만대를 돌파했다(15만5041대). 쌍용차 티볼리가 독주하던 시장에 코나가 경쟁 차종으로 등장하면서 이른바 ‘메기 효과’가 시장을 키웠다.

또 광주 공장에서 생산할 경형 SUV가 해외 수출 판로를 뚫는다면 광주형 일자리는 보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현대차는 3500만원(전체 근로자 평균 초임 연봉·주 44시간 근무 기준) 수준의 인건비를 투입해 경차를 생산하면 가격경쟁력 확보 가능하다고 본다. 시장에서 예상하는 경형 SUV 판매가격은 1000만원대 초중반이다. 현대차가 2002년 경차(아토스)를 단종한 이후 국내서 경차급 시장을 포기한 건 가격 대비 생산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차가 잘 팔리면 광주형 일자리는 전국으로 확산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판매처를 못 뚫으면 결국 5년 후 공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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