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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이연호의 과학 라운지](25)계산기도 없던 시절 나온 인류 최초 프로그래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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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여성 에이다 러브레이스, 세계 최초 컴퓨터 프로그램 만들어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딸…현재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주요 개념 제시

[편집자주] 수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그 중요성은 점차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기초과학은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져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기초과학의 세계에 쉽고 재미있게 발을 들여 보자는 취지로 매주 연재 기사를 게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전국 초·중·고등학생 대상 과학 교육 프로그램인 ‘다들배움’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들과 매주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중 재밌는 내용들을 간추려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공과대학 출신이거나 공대 재학생들은 모르면 간첩 취급 받는 인물이다.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바로 세계 최초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이름이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해 11월 고액권인 50파운드 신권 발행 계획을 밝히며 지폐 뒷면에 새로 들어갈 인물로 과학자를 추천 받았다. 영국 중앙은행은 이미 작고한 인물로 영국 과학 발전에 공헌한 인물이라는 기준을 만족한 사람 11만4000명 중에 800명을 1차 후보로 추렸다.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학자 앨런 튜링,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천문학자이자 작가인 패트릭 무어, 휠체어 위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등과 함께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컴퓨터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컴퓨터와 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언어. 에이다는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의 기본 개념을 계산기조차 개발되기 전 이미 최초로 정리했던 사람이다.

에이다는 1815년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딸로 태어났다. 에이다의 아버지 바이런은 타고난 바람둥이 기질로 가정을 등한시한 채 방탕한 생활을 하다 에이다가 8세 되던 해 객사했다. 이에 에이다의 어머니는 에이다가 아버지인 바이런의 그런 기질을 닮을까 봐 일부러 문학을 멀리하게 하고 수학과 과학에 저명한 학자들을 가정교사로 붙여 그것들에 몰두하게 했다. 에이다 역시 수학에 재능을 보이며 성장해 가던 중 18세 되던 해 당대 수학과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스승 찰스 배비지를 만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에이다는 당시 차분 기관(기계식 계산기) 연구에 몰두하던 찰스 배비지의 연구를 돕게 되고 그의 신임을 얻어 여러 중요한 서적의 번역까지 맡게 된다.

특히 배비지는 자신의 차분 기관 연구 결과를 잘 정리한 프랑스어 논문 번역을 에이다에게 부탁했고 에이다는 차분 기관에 대한 소견과 해석, 예측까지 잘 담아낸 두 권의 책을 집필했다. 이를 처음 대한 배비지는 “나보다 내 차분 기관을 더 잘 알고 있다”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당시 에이다가 발간한 책 중 ‘찰스 배비지의 해석기관에 대한 분석’에는 배비지를 넘어 에이다 본인의 해석과 예견들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었다. 특히 에이다는 현재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주요 개념이기도 한 계산이 반복되도록 하는 ‘루프(loop)’, 필요할 때마다 공식을 다시 사용하는 ‘서브루틴(subroutine)’, 구문을 건너 뛰어 실행하는 ‘점프(jump)’, 조건식이 달린 구문인 ‘if’ 등 당대에서는 원리와 개념이 전혀 없었던 새로운 것들에 대한 해석을 담아내는 천재성을 발휘했다. 더욱이 그녀는 또 다른 책에서 현재의 ‘알고리즘’ 개념까지 담아냈다. 하지만 시대는 천재를 알아 보지 못했고 그녀는 우울증과 도박 중독이라는 마음의 병도 모자라 자궁암까지 발병하면서 아버지와 같은 36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 호사가들은 바이런 부녀를 가리켜 ‘아버지는 마음의 프로그래머이고 딸은 기계의 시인이다’라고 일컫기도 했다. 에이다 본인은 스스로를 ‘시적인 과학자(poetical scientist)’로 소개했다고 한다.

에이다의 시대를 앞선 개념은 그녀의 사후 약 100년 후인 1950년대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등의 개념이 활발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 미국 국방부는 당시 군이 사용하던 수백 개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대체하기 위해 고차원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했다. 잭 쿠퍼 미국 해군 사령관이 러브레이스를 기리기 위해 이 언어의 이름을 ‘에이다(ADA)’로 제안했고 미국 국방부는 1980년 12월 10일(에이다의 생일) ADA를 승인했다. ADA는 오늘날에도 항공, 의료, 운송, 금융, 우주 산업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10일에는 에이다 러브레이스 탄생 197년을 기념하는 구글 두들이 헌정됐으며 영국 컴퓨터 협회(British Computer Society)는 매년 그녀의 이름을 딴 메달을 수여하기도 한다.

도움말=정혜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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