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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비즈톡톡] 망 사용료 내기로 한 페이스북...한국 통신업체 '글로벌 호갱' 벗어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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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브로드밴드가 페이스북으로부터 망 사용료를 지급받기로 했습니다. 2년 넘게 끌어오던 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된 셈인데요. 앞으로 인터넷사업자(ISP)들이 글로벌 사업자들로부터 망사용료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기존에는 통신사들이 서비스를 위해 돈을 안받고 감내하던 부분에 대해 협상력이 생겼다고 보는 겁니다.

망 사용료는 ISP 회사가 깔아놓은 인터넷 망을 사용하는 대가로 내는 비용입니다. 기존에는 KT가 비용을 내고 인터넷망 중간에 설치돼 있는 임시 저장 공간으로 볼 수 있는 전용 캐시서버를 사용했습니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KT 캐시서버를 통해 상호 접속이 가능하게 했지만 2016년부터 규정이 바뀌면서 KT에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당시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에 전용 캐시서버 설치를 요구하면서 이에 대한 망사용료를 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죠. SK브로드밴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타사 망을 접속한 대가인 상호접속료도 함께 지불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사용자가 페이스북을 사용할 때 KT 캐시서버로 접속하지 않고 해외 서버로 우회하게 만들었습니다.

해외서버로 우회하게 만들면 처리 속도가 떨어집니다. 임시 저장소인 캐시 서버가 국내에 있으면 사용자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메뉴에 대한 처리 데이터를 빠르게 불러올 수 있지만 해외 서버로 우회하게 되면 처리 시간이 훨씬 길어지는 것이죠.

이 때문에 페이스북은 지난해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부과받았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국내 전용서버에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사용자를 차단해 국내 소비자를 차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페이스북은 이 결정에 대해서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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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와 2년 넘게 끌어오던 망 사용료 지급 문제와 관련해 이용료를 내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201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전시회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발언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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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은 고의로 사용자에게 불편을 준 게 아니라는 입장을 알리려고 행정소송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페이스북이 행정소송을 하는 가운데 SK브로드밴드와 협상을 타결한 것을 보면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해석입니다.

IT업계에서는 페이스북과 SK브로드밴드가 일단 2년간 계약해 페이스북이 연간 약 50억~80억원의 비용을 낼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약상 비밀 유지 조항이 있어 두 회사 모두 정확한 수치를 공개한 것은 아닙니다.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 외에도 KT와는 계약이 종료돼 재협상 중이고, LG유플러스와도 역시 망 사용료 관련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이에 대해 통신업계는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이번 망 이용료 대가를 지불하는 계약으로 페이스북이 LG유플러스와도 계약을 맺게 될 것이고 협상 중인 KT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IT 업체가 KT 외에 망 이용료를 내는 사실상 첫 사례인 셈이어서 앞으로 외국계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의 협상에서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유튜브를 서비스하는 구글이나 역시 영상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도 국내 통신사에 망 사용료 지불 협상에 있어서 국내 ISP들이 전보다는 나은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실제로 유튜브는 트래픽이 크게 급증한지 오래고 넷플릭스도 최근에는 트래픽이 증가하면서 ISP 사업자가 캐시 서버를 증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ISP 사업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통신업체들이 사용자가 해외 서비스를 쾌적하게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 그동안 외국계 IT 회사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줬던 것"이라며 "페이스북이 망사용료를 낸다고 해서 구글과 넷플릭스도 쉽게 이런 결정을 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습니다.

한 인터넷 서비스업체 관계자는 "망 사용료 문제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면서 페이스북은 정부 눈치를 봐야했기 때문에 SK브로드밴드와 적당한 가격선에서 논쟁을 끝냈다고 볼 수도 있다"며 "유튜브처럼 독보적으로 앞서나가는 서비스가 있는 구글이 쉽게 협상 테이블에 앉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구글이 망 이용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ISP 업체들이 이용 환경을 안 좋게 만들 수는 없다는 해석입니다. 통신사가 해외 주요 서비스 업체에 대해서는 결국 을(乙)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망 사용료는 한편으로는 망 중립성 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통신사가 사용자들에게 최적의 상태로 서비스를 이용하게 해줘야 하는데 해외 망과 서버를 이용하게 되면 해외 서비스의 속도는 느려지게 됩니다. 이러면 모든 콘텐츠와 서비스를 동등하게 다뤄야 한다는 망 중립성 원칙이 훼손되는 셈입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해외 사업자들의 캐시서버를 통신사가 나서서 설치해줬습니다. KT를 제외하면 비용도 없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2016년부터 법 개정으로 상호접속 비용이 발생하게 됐고, 해외 사업자의 트래픽이 과도하게 급증하면서 더 이상 관행만으로 견디기에는 국내 ISP 사업자들에게 부담이 되게 된 것이죠.

사실 해외 사업자가 국내에 서버, 즉 데이터센터(IDC)를 마련하게 되면 단숨에 해결되는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이 글로벌 사업자들에게는 세계 시장에서 비율이 한 자리 수에 그칠 정도로 작기 때문에 투자에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 서버 설치를 하게 되면 세금 등의 문제도 발생하죠.

이 때문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 연구반’을 가동하고 있는데요. 통신업체와 글로벌 IT 서비스 업체간에 역차별이 있다는 국내 산업계의 주장에 따라 망 이용료를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이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정책적, 법적 근거가 마련되도록 제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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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리 아시아태평양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이 24일 기자간담회에서 넷플릭스의 올해 사업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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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같은 업체는 사실 긍정도 부정도 안하고 있습니다. 제시카 리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은 이미 지난 24일 간담회를 통해 "한국 생태계와 협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상세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습니다. 구글 역시 망 이용료 지불에 대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죠.

한 통신사 관계자는 "페이스북이 망 이용료를 내게 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면서도 "국내에서도 중요한 서비스로 자리잡은 해외 서비스 사업자에게 이번 협상을 계기로 국내 업체가 유리해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낙관론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김범수 기자(kb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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