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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잇따라 허점 드러낸 '치안 시스템'… 커지는 시민 불안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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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사후 조치 아닌 사전 예방 중심 돼야”

“출동한 경찰관은 법 집행 매뉴얼과 절차에 따라 조치했다.”(‘암사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112 문자신고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며, 긴급 보완 조치를 완료했다.”(‘당산역 버스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최근 벌어진 두 흉기 난동 사건 현장에서 경찰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경찰이 내놓은 해명이다. 일선 경찰관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단 치안 시스템의 허점이 이번 사건들을 통해 드러났다는 것이다. 경찰은 문제점들을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경찰의 치안 활동이 사후 조치가 아닌 사전 예방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암사역 사건으로 불거진 테이저건 사용 문제와 관련해 경찰은 테이저건 사격 훈련 등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현재 안정성 시험 중인 ‘한국형 테이저건’도 올해 안에 보급할 계획이다. 지난 13일 서울지하철 암사역 앞 도로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테이저건과 삼단봉을 들고도 흉기 난동을 부린 10대 남성을 바로 진압하지 못한 사건이다.

세계일보

지난 13일 오후7시쯤 서울 지하철 암사역 3번 출구 앞 인도에서 A(19·사진 왼쪽)군이 친구 B(18)군을 흉기로 찌른 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캡처


지난 19일에는 서울지하철 당산역 앞을 지나던 마을버스 안에서 한 남성이 흉기 난동을 부린다는 문자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신고자 계십니까?’라고만 외친 뒤 버스에서 내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 대응을 놓고 질타가 쏟아졌다. 112 문자신고 시스템에서 단문의 경우 45자가 넘어가면 뒷부분이 잘리는 바람에 신고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부랴부랴 단문 기준을 70자로 늘렸다. 장문(MMS)은 기존과 같이 1000자까지 전송 가능하다.

경찰의 이런 조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안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잖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모(31)씨는 “암사역 사건이나 버스 흉기 난동 사건을 보면 경찰보다 시민들이 더 적절하게 대처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슨 일이 생겨도 경찰만 믿고 안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윤모(45)씨는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이 우선시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선 현장 경찰관들도 할 말이 많다. 경찰 개인의 잘못이 아닌 치안 시스템의 문제였음에도 경찰의 초기 대응에 비판이 집중됐다는 것이다. 서울시내 한 경찰서 관계자는 “반대로 현장에서 경찰관이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재량껏 대처했다면 ‘과잉 진압’이나 ‘공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이 나왔을 것”이라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경찰이 법이나 매뉴얼을 어길 수 없는 노릇 아니냐”고 되물었다.

세계일보

지난 19일 벌어진 ‘당산역 버스 흉기 난동’ 당시 신고자가 경찰과 주고 받은 문자 내용. 경찰은 이날 “112 문자신고 시스템의 한계로 일선 경찰관에게 신고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현행 치안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드러난 만큼 경찰관이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일선 경찰관 사이에서 매뉴얼에 따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다가 차후 민형사상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라며 “경찰 조직이 현장 경찰관을 보호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경찰행정학)는 “경찰의 존재 목적이자 사명은 범죄 예방”이라며 “경찰이 인권만 강조하다 정작 시민들의 안전권이 침해당하는 지경까지 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사회적으로 경찰의 적법·타당한 재량권 발휘를 이해하고,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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