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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지역이 중앙에게] 이래서 가려 뽑아야 한다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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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예천군 의원들의 속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억울할 것이다. 오히려 더한 곳도 있을 텐데, 게다가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딱 걸렸다’며. 군의회 누리집에 국외 연수 중 폭행 사건과 여성 접대부 요구를 비판하는 글이 이어지고, 경찰이 항공료 부풀리기 의혹을 조사한다는데도 의회는 꿈쩍도 않고 있다. 늘 그랬듯이 여론이 숙지면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될 테니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이다.

그동안 시·군의회의 부적절한 국외 연수는 공개될 때마다 혹독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보란 듯이 꾸준히 이어졌다. 연수 기획안을 사전에 심사하도록 하고 있지만, 의원들의 ‘셀프심사’는 있으나 마나 한 형식에 그친다. 여행사의 패키지 관광 일정에 연수 일정을 구색 맞추기로 넣어 다녀온다. 그나마 보고서도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짜깁기해 대충 남기면 그만이다. ‘의원님들을 모시고’ 다녀온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대신 쓴 보고서가 공개돼 망신을 사기도 하지만 그때만 잘 넘기면 된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의회의원 공무국외여행규칙’을 손질해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하겠다고 한다. 공무국외여행 계획서를 시·군의회 누리집에 공개한 뒤 사전 심사위원장을 민간위원에게 맡기고, 부당한 여행 비용은 환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처럼 시민들이 직접 개입하기 힘든 상태로 의회 스스로 처분을 결정하는 불합리한 제도적인 한계도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의원들의 자질과 능력부터가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망신을 시킨 꼴뚜기가 죄지, 어물전은 확연히 싱싱해지고 있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자칫 아기까지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성난 여론이 지방의회 폐지 주장까지 이어지면서 자칫 지방분권의 대의가 흔들릴까 하는 우려가 읽힌다. 일부 국회의원이 잘못 한다고 국회 폐지를 주장하지 않듯 지방의회 폐지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정말 어물전이 싱싱해지고 있다는 데는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지역 의회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잘 알고 있는 그대로다. 거대 정당들이 지역 의회를 장악한 채 다양한 세력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폐해를 알면서도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진되던 4인 선거구제는 무산됐다. 그 결과 상당수 지역 의회가 지방자치단체장과 같은 정당 소속이거나 비슷한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로 채워졌다. 거대 정당 입장에선 황금비율이겠지만 그렇게 구성된 의회가 행정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고 감시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불행하게도 그런 지역에서는 의정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치도 낮다.

지금 예천군 의원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건 뭘까? 지방의회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도 규탄시위도 전원사퇴 요구도 아니다.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공천권자의 눈 밖에 났다는 점이다.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인 시·군 지역에서는 의원 후보들의 가장 중요한 자격이 ‘줄 잘 서기’다. 당선만 되면 의정활동은 뒷전이다. 의회 권력을 활용하면서 줄 서기에 열을 올리고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 그래서 행정 권력을 견제하는 대신 또 다른 권력으로 군림하는 폐해를 자주 목격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가 대구경북 기초·광역 의원 인권교육을 하기로 했다. 인권의 역사와 개념, 차별과 혐오, 인권 현안 강의를 계획하고 각 의회로부터 신청을 받는다. 지역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이 교육을 받기를 권한다. 최소한의 인권감수성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의정활동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선거 때 거르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부족한 부분은 차근차근 가르쳐서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도록 해야 한다. 언제까지 자질이 의심스러운 의원님들 걱정을 해야 하나. 지역 정치권을 좌지우지하는 서울의 정치권력이 4인 선거구제를 외면하고 그들의 손익계산서에 맞춰 공천을 한다면, 방법은 한가지뿐이다. 가려 뽑아야 한다. 그래야 어물전이 싱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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