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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김성회의 ‘3대 소통병법`]
우리가 남이가 vs 남일까 vs 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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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기성세대는 늘 확신에 차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다. “우리가 남이가?” 하고 한 명이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이 “아니다, 아니다” 할 때 뭔가 뜨거운 게 가슴에서 솟아오르고는 했다. “이게 술인가?” 하면 “아니다, 아니다, 정이다” 하며 말 그대로 술잔에 정을 담았다. 사적인 정이 돈독할수록 일도 잘된다는 게 586세대 이상의 보편적 정서다.

40대의 낀 세대인 X세대의 정서는 복합적이다. “우리는 남이 아니다”라는 말에 50%의 동의만 한다. ‘우리는 남일까?’ 마음속으로 의문을 갖지만 차마 겉으로 대놓고 의문을 표하지 못해 시늉이라도 구호를 복창했다.

반면 신세대들은 대놓고 말한다. “우리는 남이다!”라고. 이들은 사적인 관심에 대해 “노 땡큐”라고 말하며 야멸차게 거리를 둔다. 끈끈한 관심을 표하면 관심을 꺼달라고 깐깐하게 요청한다. 조직생활은 조직생활일 뿐, 사적인 생활과 구분하고 싶다고.

‘공과 사를 구별하라’. 예전에 조직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강조한 이유는 그만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신세대에게는 이 말을 구태여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미 칼같이 ‘공과 사를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유불급, 둘 다 지나친 것은 같지만 기성세대가 지나치게 구분 안 한 게 문제였다면 이들은 지나치게 구별하는 데서 문제라는 것이 차이다.

‘사적 관심으로 관계의 다리를 놓으라’. 기성 세대가 조직생활에서 마르고 닳도록 들은 이야기다. 직장 동료 간 친한 사이를 가리킬 때 “그 집 숟가락 수까지 다 안다”는 관용적 표현을 쓰는 것이 그 방증이다.

모 건설회사 CEO는 임원 리더십 평가를 할 때 “직원의 관혼상제를 사전에 미리 파악하지 못하는 부서장은 부서장 자격이 없다”고까지 공언하며 인사고과에 반영할 정도였다. 전통 조직문화에서 직장 상사는 공적인 지식뿐 아니라 사적인 지혜에서도 다양한 정보를 전수해주는 멘토 역할을 자임했다. 집들이, 자녀 돌잔치, 부모의 환갑과 진갑, 초상까지 생애주기를 함께하며 챙겨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직장 상사였다.

물론 직장 상사의 과장 섞인 인생 경험담을 100% 곧이곧대로 듣다 부작용 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갓 결혼한 직원에게 해주는 인생 조언이 그 대표적 예였다. “신혼 초반에 주도권을 잡아야지, 놓치면 평생 고생한다”고 호기롭게 소리치며 술을 한바탕 거나하게 먹여 늦게 귀가를 하도록 사주하는 등등이다.

기성세대에게 공과 사는 이처럼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었다. 여러 가지 자연스러운 사적 접촉과 관찰을 통해 말뿐 아니라 그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 등을 보며 인간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이렇게 사적으로 엉킨 정은 유사시에 힘을 발휘했다. 상사로서 힘든 지시를 할 때 윤활유로 작용했다. “힘들지만 어쩌겠냐, 너 아니면 내가 누구한테 말하겠냐, 좀 애써줘야지”라는 얘기는 직장 상사가 어려운 부탁을 할 때 쓰는 전가의 보도 멘트였다. 전통적 기성세대는 일이 꼬이면 관계로 푸는 것이 가능했다. 상대의 신상을 속속들이 알고 일상을 오롯이 파악하고 있던 덕분이다.

“퇴근 후 술 한잔?” 하면서 ‘딱 한잔’이 ‘또 한잔’으로 이어지며 결국은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퇴근시간(?)을 늦추고 통사정해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상사를 치받아 생긴 갈등, 부하 직원을 심하게 야단친 갈등이 소주 한잔에 녹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첨예한 갈등이 “추웅~성” 한마디에 묻혀버리고는 했다.

요즘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그야말로 ‘그때를 아십니까’다.

일한 기간과 상관없이 서로 신상도 일상도 알기 어렵다. 일은 일이고 일을 관계로 풀기는 어렵다. 사적인 관심을 표하는 것부터가 난항이다. 586 베이비부머 세대들로서는 아예 신세대 직원과 대화할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모 대기업에서는 ‘임원과의 점심식사’를 만들었다 유야무야 폐지했다. 임원들 요구가 아니라 직원들 요청이 쇄도해서다. 불편하게 신경 쓰며 스테이크를 먹느니 편의점 혼밥일망정 컵라면이 더 속 편하다는 이유였다. 가정에서 식구가 같이 밥을 먹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company(com+pany·함께 빵을 나눠 먹는 사이란 뜻에서 유래)’도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저녁 회식은커녕 신세대는 점심시간도 자기계발을 한다며 함께 먹지 않으려는 경우가 다반사다.

X세대 리더들이 술 타임 대신 소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점심 티타임이다. 이들은 과거 전통세대의 호기로운 일장 연설 무용담 대신 관심을 표하는 질문을 하는 것으로 나름 탈꼰대적 태도를 보이려 애쓴다. 이때 심금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모 IT 기업의 점심시간 후 티타임에 생긴 일이다. 40대 중반 L부장이 30대 초반 K대리에게 “자네는 결혼 안 해? 새해에는 좋은 사람 만나야지?” 하고 덕담 겸 질문을 던진 것. K대리는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고양이랑 살 거예요”라고 답했다. L부장은 무심코 “아, 사람이 사람이랑 살아야지. 고양이랑 살면 쓰나?” 반문했다.

여기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 것)를 넘어 전투 모드로 바뀌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 같은 분위기가 됐다. 경계경보를 넘어 공습경보. 또래 신세대 직원들이 한번에 L부장에게 속사포처럼 반박을 해댔다. “우리에게 이런 세태를 물려준 게 누구냐. 우리는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지금의 40대 이상은 시대를 잘 만나서 적은 노력으로 큰 성취를 거뒀지만, 지금 우린 그렇지 않다. 혼자 살기도 버거운데 어떻게 결혼해서 살 수 있겠느냐” “나이 들면 결혼해야 한다는 것도 집단주의 산물이다” 등등 벌떼공격을 퍼부은 것. L부장은 결혼 운운 한마디로 졸지에 개념 없는 꼰대상사가 돼버렸다.

자신의 세대 같으면 상사의 배우자 만난 이야기, 연애담, 이성을 만나 결혼으로 골인하는 법 등 덕담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됐을 이야기가 이처럼 날카롭고 뾰족한 파국을 맺은 게 L부장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후 그는 직원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공장(사무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 무엇이 어떻게 신세대 직원들의 심기(?)를 건드릴지 종잡을 수 없어서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도 없고….

L부장의 ‘티타임에 생긴 일’ 사건에 대해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세대별로 반응을 물어봤다. 모두 분노를 표한 것은 공통적인데 이유가 달랐다. 50대 이상 리더급은 “이런 버릇 없는… 따끔하게 야단쳐야지” 했다. 40대는 “되도록이면 어울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되도록 말을 섞지 말라. 책 잡히면 본전도 못 찾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반면 20대 신세대 직원들은 “L부장이 사과를 해야 한다. 왜 공적인 데서 사적인 간섭을 하느냐”는 등으로 갈렸다. 한마디로 리더들은 포용력을 발휘하고 싶은데, 직원들은 오지랖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다. 오지랖과 포용력, 그 한 끗 차이가 애매하다.

사적 대화를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라이프사이클보다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하라. 알고 보면 세대 차이는 토픽 문제다. 리더 본인의 관심 주제, 직원의 사적인 삶에 대한 호기심은 피하는 게 좋다. 예전에는 직책만으로도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요즘이야 어디 그런가. 인생의 진도 이야기, 관혼상제, 부모, 결혼 이야기 등 라이프사이클은 기성세대에게는 메인 토픽이고 관심거리지만 밀레세대에게는 번외다. 오히려 피하고 싶은 이슈다. 차라리 본인의 취미, 트렌드 등 라이프스타일 이야기를 하는 것에 훨씬 매력을 느낀다.

둘째, 화두는 던지되 정보를 요청하라. 신세대 직원들이 먼저 다가가 대화를 청하는 리더를 보면 화두는 던지되 대화는 상대가 주도하도록 청하는 상사다. 진정으로 호기심을 표할 때 그들은 말문을 연다. 조언이나 훈계를 하기보다 들어보라.

“딸 같아서 그러는데…” “가족 같아서 하는 이야기인데…” 이들은 가족으로부터 듣는 조언도 이미 차고 넘친다.

또 충고나 조언을 하지 마라. 신세대가 질색인 것은 답정너, 기승전 교훈이다. 웬만한 전문지식이나 한마디 훈계, 설교는 별로 효용성이 없다. 차라리 답을 구하라. 요즘 뜨는 곳, 영화, 트렌드 등 이들이 잘 알 만한 것, 흥미로워할 것에 대해 정보를 요청해보라. “내가 ○○하려고 하는데 요즘 재미있는 것 뭐가 있나?” 하는 식으로 구체적 정보를 요청할 때 그들은 비로소 신나게 말문을 열 것이다.

매경이코노미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2호 (2019.01.16~2019.01.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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