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5 (수)

[기억할 오늘] 카터의 징병거부자 사면(1.21)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청년들의 징병거부 시위 장면. davidswanson.org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1973년 징병도 종료됐지만, 전시 징병거부로 기소ㆍ수배된 20만 9,517명에 대한 처리문제는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들 중 약 10만여 명은 60년대 말부터 국경을 넘어 주로 캐나다로, 약 10%는 유럽 등지로 도피했다. 징병됐다가 탈영한 이들 중 약 1,000여 명이 옮긴 거처도 캐나다였다. 당시 캐나다 총리는 힘의 우위에 기반한 미국의 군사외교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피에르 트뤼도(현 쥐스탱 트뤼도의 아버지)였다. 피에르 트뤼도는 미국의 병역 거부자를 기소하거나 추방하지 않았고, 알려진 바 오히려 국경경비대에게 미국서 넘어오는 청년들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캐나다에 마냥 눌러 살 수도 없었고, 고국에 돌아올 수도 없었다. 신분을 위조하거나 그냥 국내에 숨어 지내던 다수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징병 거부ㆍ기피자 처리문제는 1976년 미국 대선의 주요 이슈였고,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는 그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면을 공약의 하나로 내걸었다. 그리고, 취임식(1월 20일) 다음날인 21일 자신의 저 공약을 이행했다.

후폭풍도 거셌다. 당연히 참전자와 베테랑 그룹들이 반발했다. “비애국적인 범법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거였다. 거꾸로 사면을 요구하던 인권그룹도 카터의 조치를 미흡하다며 비판했다. 징병기피자뿐 아니라 복무 중 탈영해 처벌받거나 불명예제대한 병사들, 반전운동에 가담했다가 기소된 청년ㆍ학생들에게도 사면에 준하는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는 거였다.

2006년 이후 이라크, 시리아, 아프칸 전쟁 와중에 탈영한 병사는 약 2만여 명이다. 2009년 아프간 부대를 탈영했다가 탈레반에 붙잡혀 5년간 구금됐다 풀려난 보우 버그달(Bowe Bergdahl, 당시 병장)도 그 중 한 명이다. 2017년 11월 군 검찰은 14년 징역형을 구형했지만 판사는 계급 강등(이병)과 불명예제대만으로 실형을 살진 않게 했다. 그 판결을 두고 보수 진영은 반발했고, 그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는 “군에 대한 모독이며, 버그달은 총살감”이라고 말했다. 발언의 적절성을 떠나 적어도 트럼프가 할 말은 아니었다. 명문 뉴욕군사학교 출신인 그는 베트남전쟁 중 학업을 이유로 4차례 징병을 유예 받았고, 68년 ‘발뒤꿈치 통증 증후군’으로 끝내 징병유예 판정을 받았다. 최윤필 기자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