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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일사일언] 41세 파이프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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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나웅준 트럼페터 '퇴근길 클래식 수업' 저자


음대 재학 시절, 오케스트라 합주 같은 앙상블 시간에 담당 선생님한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내라"였다. 실제로 단원들 간 합이 잘 맞으면 파이프오르간 같은 사운드가 나온다. 저마다의 소리가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는 뜻이다. 이런 비유는 프로페셔널한 오케스트라에서도 두루 쓰이는데, 그 비밀은 바로 오르간 내부에 있다.

나는 대형 파이프오르간 콘서트에서 공연 진행자로 데뷔했다. 오르간 내부에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 웅장한 속살, 신기한 구조를 관객들에게 영상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는 역할이었다. 오르간 내부를 샅샅이 살피며 소리가 나는 과정을 알려주면 다들 감탄한다. 사람의 신체 구조와 똑 닮아서다.

파이프오르간은 인간의 심장 같은 바람상자에서 똑같은 밀도와 속도의 바람을 각 파이프에 전달해 소리를 낸다. 이 때문에 모든 소리가 한결같이 고르게 울려 퍼진다. 이게 핵심 비밀이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 파이프오르간 같은 사운드를 쉽게 들을 수 있는 건 그들의 연주력이 100년 동안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고 전체적으로 평등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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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오르간은 오래전 유럽에선 그 도시의 상징이었다. 가장 큰 건물이었던 교회는 그 지역 부(富)의 상징이었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문화의 수준을 나타냈다. 지금도 서양의 오르가니스트는 어느 교회 전속이었는지에 따라 명성과 대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 특히 1000만명이 사는 수도 서울에서도 파이프오르간은 주요 공연장의 품격을 드높이는 상징물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강북의 세종문화회관과 강남의 롯데콘서트홀이 대표적이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과 함께 들여온 파이프오르간은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

1년에 두세 번 드문드문 공연해왔으나 그나마도 지금은 짧은 휴식에 들어갔다. 노후화로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해서다. 다행히 시민들한테서 기부금을 받아 오르간 살리기에 나선다고 한다. 부디 잘 진행돼 멋진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길.

[나웅준 트럼페터 '퇴근길 클래식 수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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