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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세계타워] 공정경제의 포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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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혁신성장에 올인하는 동안/또다른 축 경제민주화 동력 잃어/주무부처 공정위 제구실 못하고/되레 파행… 기업 신뢰 확보 시급

문재인정부 집권 3년, 경제정책이 변화하고 있다. 취임과 함께 제이노믹스의 핵심으로 여겨지던 소득주도성장 대신 혁신성장이 맨 앞에 자리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경제”라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최근 대통령은 수소차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수소경제는 정부가 꼽은 혁신성장 3대 전략 투자 분야 중 하나로, 수소경제의 중심에 수소차가 있다. ‘수소경제=수소차=현대차’라는 등식 속에 현대차 주가는 급등했다. 대통령이 기업의 홍보대사라는데, 주식이 오르지 않을 리 없다. 현대차 주가는 약 4개월 만에 처음으로 13만원을 넘어섰다.

세계일보

안용성 경제부 차장


정부가 혁신성장에 올인하는 동안 제이노믹스의 또 다른 축인 공정경제는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민주화 관련 소식은 최근 들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해 말 2019년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기점으로 ‘공정경제 후퇴’ 지적은 증폭됐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최근 논평에서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재벌경제력집중 억제와 지배구조 개혁’ 과제는 오리무중”이라고 썼다.

정부는 여전히 공정경제의 일관된 추진을 강조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공정경제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라는 우리 경제의 두 바퀴가 힘차게 굴러갈 수 있도록 탄탄한 도로 역할을 담당하는, 일종의 인프라”라고 말했다. 정부가 혁신성장에 힘을 쏟더라도 공정경제 바탕에서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김 위원장이 얘기한 ‘도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경제의 주무부처로 튼튼한 도로를 깔아야 하는 공정위가 오히려 ‘포트홀’이 되고 있다.

위원회는 현재 파행 운영되고 있다. 불법 재취업 사건에 연루된 부위원장은 지난해 8월 이후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다. 위원장이 자진사퇴를 요구했지만, 부위원장은 ‘버티기’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이 벌써 5개월이다.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거쳐 취임한 부위원장이 임기의 절반가량을 아무 일 없이 보낸 셈이다.

심판관리관 업무정지 문제도 출구가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사건처리 절차개선 과정에서 상부의 업무방해가 있었다”며 폭로한 유선주 심판관리관은 현재 김 위원장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김 위원장의 업무정지가 공무원 담임권, 평등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다. 판사 출신인 유 국장은 공정위에 개방직으로 들어왔다.

김 위원장은 유 국장이 부하직원을 상대로 갑질을 했다는 제보가 다수 접수됨에 따라 유 국장을 업무배제했다. 유 국장은 지난해 말부터 연차와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고 있다. 조사 대상이 없으니 진상조사와 징계 절차는 ‘올스톱’된 상태다. 게다가 헌법재판소가 이 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면서, 위원회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공정위 심판정은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판결하는 1심 기능을 한다. 경쟁법의 재판정이다. 주요 사건의 경우 9명의 위원이 합의를 거쳐 불법 여부를 판단한다. 그 자리에서 법률적 조언과 보완을 하는 역할이 심판관리관이다. 이들 구성원 중 2명이 업무배제된 상태다. 유 국장의 경우 계약이 만료되는 9월까지 사실상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터지기 직전인 상처에 대책 없이 붕대만 감아놓고 낫기를 기다리는 꼴이다.

파행 운영되는 심판정에서 내려진 심의결과가 신뢰를 얻기란 불가능하다. 최근 만난 한 기업 임원은 “공정위가 저 모양인데, 누가 누굴 심의하느냐”고 꼬집었다. 위원회가 공정경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 회복을 통해 기업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오는 24일 ‘공정위 취업 특혜 사건’의 1심 선고가 내려진다. 선고 결과에 따라 부위원장 거취를 둘러싼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는 셈이다. 위원장은 미뤄뒀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또 다른 후폭풍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 오롯이 위원장이 떠안을 책임이다.

수많은 기업이 공정위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은 공정위는 기업에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 공정위가 바로 서야 공정경제가 바로 선다.

안용성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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