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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세상 읽기] 용산 참사 10년, 그 기억을 넘어 / 황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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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같은 현실을 접해도 우리는 각자 다른 기억을 갖고 산다.

2009년 1월20일 오전, 출근길에 경찰의 강제진압에 의한 철거민 사망 소식을 접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정말.’ 철거에 몰린 이들이 저항하면 뭔가를 조금씩 더 내주는 식으로 유지되어온 수십년 된 부실한 재개발 정책, 그러나 이처럼 공격적으로 철거민들을 사지로 내몬 적은 없었다.

수소문 끝에 관련 단체들이 대책회의를 하고 있는 곳을 찾아 동료 변호사와 함께 달려갔다. 오후, 급한 대로 동료 변호사들과 역할을 분담하여 체포된 철거민들을 접견하고 경찰, 검찰 조사에 참여했다. 부상당한 철거민이 있다는 병원도 쫓아갔지만 허탕을 쳤다.

저녁, 시신을 보려는 유가족들을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수십명의 경찰이 영안실을 봉쇄하고 있었다. 경찰은 검찰 지시가 있었다고 변명하고 검찰은 지시 내린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자정이 넘도록 계속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검찰 쪽에 전화했다.

새벽 1시 유가족들과 함께 영안실을 들어갔다. 불탄 시신과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함께 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새벽 4시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다시 영안실로 향했다. 날이 밝고 더 경험 많은 변호사들이 결합했고, 나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 후 대책 없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이들이 없도록 재개발 정책이 바뀌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내일이 오는 게 두렵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철거민 얘기만을 최근 들었을 뿐이다. 용산 참사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당시 검찰과 경찰의 책임자는 정치인이 되거나 새 정부에서도 요직을 차지했다.

용산 참사의 ‘기억’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틀 후 후배 변호사와 함께 진도로 향했다. 극단적인 고통과 절박함에 처해 있는 피해 가족들을 외면하며 이러저런 얘기를 둘러대는 식으로 대처하는 정부를 봤다. 참다못해 청와대행 행진을 시작한 가족들을 막으려 한밤중에 뛰쳐나와 청와대행만은 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참사보다는 대통령 심기를 더 중시하는 국무총리와 장관을 봤다.

우여곡절 끝에 심해수색장비가 곧 투입될 2017년 3월31일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참사 후 채 한달이 안 되어 갑자기 국민안전처는 재난소식에서 이 사건을 없앴고, 선사 측은 기존 구조선박들을 철수시켰다. 피해 가족들이 국무총리 공관을 찾아 항의하고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만나 억울함을 호소한 직후의 일이다.

세월호 참사도, 스텔라데이지호 참사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관련된 많은 이들 중 극소수만이 책임을 추궁당했다. 크고 작은 참사와 재난, 사고들은 이어지고 있고 기존 참사 관련자 중 일부는 정치인으로 활동하거나 새 정부에서도 요직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차기 대통령 후보로 명함을 내밀고 있다.

참사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엄중한 책임자 처벌, 그리고 정권의 변화에도 흔들림 없는 인권에 기초한 시스템 정착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록 적폐청산, 안전사회를 외치지만 시스템적 접근은 요원하고, 너무도 많은 참사 관련 가해자들이 새 정권에 적응하거나 차기 정권을 노리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어릴 적 읽었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혁명에 성공한 돼지들과 적폐세력 농장주들의 파티가 자꾸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우리의 ‘기억’이 헛되지 않도록, 그 기억이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할 위정자들을 볼 수 있는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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