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여적]목포·GP·을지면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인공지능·수소차로 상징되는 미래 혁명의 선구자가 되려는 열망에 휩싸여 있다. 새로운 것을 먼저 찾고 먼저 만들어 상품화하고자 한다. 다른 한편 오래된 것을 찾고 간직하는 일에도 똑같은 열정을 쏟는다. 한국인은 점점 오래된 것에 높은 값을 쳐주고 있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일까? 최근 새로운 소식(뉴스) 세 가지 모두 오래된 것들이다. 목포·감시초소(GP)·을지면옥.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근대역사문화유산인 목포 일제강점기 일본인 주택 밀집지 주변에 있는 집 여러 채를 지인을 통해 사도록 한 일로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근대 문화를 향한 뜨거운 사랑의 표출인지, 감춰진 부동산 욕망의 분출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문화재청은 강원도 고성 비무장지대 내 최초의 GP를 문화재로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서울시는 청계천·을지로 재개발로 공구상가와 오래된 가게 을지면옥이 헐리지 않도록 대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과거 같았으면 목포 적산가옥은 일제의 잔재, GP는 분단의 상징, 공구상가는 개발독재 시대의 유산으로 결코 사랑받기 어려운 공간이다. 김영삼 정부 때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하던 광화문 조선총독부 청사를 부수고 박수받은 일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부끄러운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도 시민들이 함께 기억하고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산으로 재평가됐다. 더 이상 과거에 상처받지 않을 만큼 자신감을 회복했기 때문일까?

정말 자신감이 생겼다면, 근현대문화유산을 더 찾아보자. 규정에 따르면 50년 안된 무형 자산도 가능하다. 오래되고 낡아 지금은 유용하지 않은 것 가운데 고르면 된다. 지역주의·색깔론·재벌체제·소수자 차별은 어떤가? 반론이 나올 것이다.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번성해온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걸 후대에 물려줄 미래 유산으로 지정하자고 나설지 모른다.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발표문을 동시대에 듣고 싶다. ‘우리를 불행에 빠뜨렸던 것들이지만 더 이상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는 과거의 일이 되었기에 근현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한다.’

이대근 논설고문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