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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열심히 하는 이유? 쪽 팔리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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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근무하던 회사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규모 유상증자 청약이 마감되고 한 시간 여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전체 유상증자의 진행을 맡아 오던 증권사 담당 차장이 전화를 해왔다.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됐죠?”

“예, 무슨 일이 터지기라도 했습니까? 뭔 일인데요?”

“방금 청약 집계가 끝이 났는데요. 100프로가 넘었습니다.”

“그래요? 오전까지 청약률이 너무 낮아서 90프로만 되라고 기도했는데.”

“그러게요, 저희도 90프로 수준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실력 있는 분이 움직이니까 이렇게 된 것이죠. 마감하고 저도 깜짝 놀랬습니다.”

“구주주 배정에서 100프로를 넘었으니, 이걸로 끝이죠?”

“예, 청약이 101.12프로라, 일반 공모는 생략입니다.”

무려 5천만 하고도 5백만주나 더 추가로 주식을 발행하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감행해 오면서 땀 꽤나 흘렸던 터라, 통화를 끝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성공적인 대규모 유상증자의 종료’ 나의 캐리어에 작게 나마 또 한 줄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길로 바로 CFO인 재무부사장에 보고를 했다. ‘고생 많았다’는 대답과 함께 ‘윗선에 보고하라’는 숙제를 받았다.

“부사장님이 연락해 보세요.”

“무슨 소리, 고생한 사람이 해야지.”

시켜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하고 싶어서

떨떠름한 기분으로 자리에 와서 일단 문자로, 청약주식수와 청약율 그리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최고경영진에게 보고를 했다. 십여 분쯤 지나고 당연히 문자를 봤을 것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했는데,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청약 마감일인 그 날이 금요일인 것은 다행이었다. 다음날 청약 결과가 공시로 나가야 했는데 월요일에 하면 되었다.

한참 뒤에 온 전화는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다.

“끝나다니? 무슨 소리야? 일반 공모 절차가 아직 남아있잖아?”

“구주주 배정이 미달일 경우에, 일반 공모로 넘어갑니다.”

“…………..”

“구주주 배정에서 이미 100프로 초과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종료입니다.”

“………….”

“이젠, 주금 납입과 행정적인 절차만 진행하면 됩니다.”

“………… 수고 했어요.”

그 전에도 유상증자는 여러 번 진행을 했겠지만, 구주주 배정에서 청약이 초과되는 것은 처음이었던지, 문자 메시지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를 못해서 다시 묻는 연락이었다. 잘 나가는 회사도 아니어서 구주주 배정에서 늘 미달하고, 일반 공모에서 높은 청약율로 마감했다는 기사가 나오곤 했었다. 당연히 그게 잘 하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듯 했다. 화끈하게 언론의 조명을 받을 수 있는 일반 공모를 생략한다니 의아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별 볼일 없던 회사였지만 성공적인 유증을 마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커뮤니케이터로 일하고 있는 후배들의 연락이 이어졌다. 대부분 ‘고생 많았고 대규모 유증에 성공도 했으니, 받은 보너스로 한 턱 쏴라’는 것이었다. 그런 반응은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신경을 많이 써준 언론사 데스크서부터 기자들 몇 명이 축하 연락을 해오면서 같은 얘기를 했다.

“한 턱은 당연히 쏴야지요. 그런데 유증 성공에 보너스는커녕 욕만 실컷 먹었습니다.”

“무슨 얼토당토 않은 얘기세요?”

홍보대행사나 IR대행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도 않았음에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성공리에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불려가서 된통 당하기만 했다. 평소 주가가 높지 못해 유증 할인율을 적용하고 보니 발행가가 액면가일 수 밖에 없었다. 주식발행 초과금이 없으니, 주관사 등에 증권 발행 제비용을 지급하고 나니 약간의 자본 잠식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는데, 이유를 불문하고 자본 잠식이라는 것 때문에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대략적인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후배들이나 기자들이 오히려 불같이 화를 냈다. ‘세상에 상상할 수 없었던 어마 어마한 성공을 이끌어 냈는데, 보너스에 칭찬은 못해줄망정’ 이라며 자기 일 보다 더 화를 냈다.

“보너스 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았고, 내게는 성공했다는 이력 그리고 지금처럼 주위에서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제일 큰 보너스죠.”

“그 정도 일이면 보너스를 두둑히 받아야 하는데, 뭐 하러 형 혼자 그 고생을 하세요?”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 나 아는 사람들한테 쪽 팔리지는 않아야죠!”

내부에서 알아 주지 못해도, 내가 알고 밖에선 다 알아

그 보다 몇 년 전, 더 큰 회사서 근무할 때도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었다. 전략회의에 참석하고 보니, 대행사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짜증을 내던 나 몰래, 경영진 아는 라인이었는지 대행사 임원이 와서 발표를 했다. 회의가 끝이 나고 경영진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잘 협조해 달라고 주문했다. 기분도 꿀꿀하던 차에 통성명이나 하자며 대행사 임원과 저녁을 함께 했다. 반주가 몇 순배 돌자 갑자기 대행사 측 사람이 내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대행사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움직일 수 있는 언론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았다. 언론에 대한 영향력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뒤에서 적극 도와줄 테니 프로젝트를 잘 진행해 보자’고 건넸던 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무사는 무사를 알아보는 법이어서 서로 몇 마디 정도면 ‘간 보기’가 끝이 난다.

기업 설명회 행사가 여의도의 모 호텔에서 열렸고, 대행사가 아닌 내가 연락한 기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애널리스트들이며 언론이 대거 참석한 그 행사는 성황리에 끝났고, 덕분에 대규모 유상증자도 바라는 목표 금액만큼 들어왔다. 그 뒤 후배들이나 기자들이 혀를 끌끌 차댔다.

“고생은 형이 하고, 돈은 누가 벌어가요? 회사 경영진은 아세요?”

“몰라도 돼요.”

“무슨 말이에요? 경영진에게 인정 받으려고 고생하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인정 받고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은 일도 자기가 한 것처럼 포장하는데, 고생은 자기가 다 해놓고’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경영진이 알고 인정해 주고 보상받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애초부터 그런 것을 기대할만한 회사가 아니었다. 내부에서 인정 받는 것 보다는 이 바닥 전문가들 즉,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언론 기자나 커뮤니케이터들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맘이 더 컸다.

이직을 몇 번 했는데, 그 때마다 속마음은 ‘아마도 나 아닌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하기 쉽지 않을 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문제가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온 후임이 힘들어서 도움을 요청할거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근무할 땐, 내가 없으면 생기던 문제가 정작 내가 이직하고 난 뒤에는 별 문제 없어 보여 허탈하기도 했다. 내가 이직하면서 문제도 함께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들은 문젯거리로 생각지도 않는 것을 나만 여태 꽁꽁 싸 메고 다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을 계속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예전 직장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나처럼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후배 얘기를 들으면 뿌듯하다. 내가 하던 것과는 천양지차로 다르지만 회사는 또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사실, 지나간 일에 대해 자기 일이 아닌 이상에야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 특히 수십 수백 군데를 커버하고, 수시로 인사 이동이 있는 기자들의 경우, 일 터진 그때야 파헤치고 들쑤시고 하지만 몇 년 지나서까지 몽땅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코피 터져가면서 열심히 한 것과 설렁설렁 하는 일도 나중에 흐려진 기억 속에서는 그냥 다 지나간 남의 일이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크고 작은 일들을 그냥 스쳐 보내지 않는 것은 그 프로젝트에 내 이름이 꼬리표로 달려 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그런 사소한 것에도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사람들은 기억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중에라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도록 최소한 나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실패한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쪽 팔리는 일은 없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이끄는 동력이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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