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4 (토)

[기고] 국방백서와 국가안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 전쟁사를 살펴보면 인접국가 간에 적의(敵意)를 품고 있으면서도, 힘의 균형에 의해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자칫 상대의 전력이 약하다고 오판하거나 자국의 전력을 과신, 힘의 균형이 깨질 때는 반드시 전쟁이 발생해 왔다.

중국 병가(兵家) 사상의 진수를 담은 손자병법에서도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지피(知彼) 싸움을 할 상대의 전력을 알고, 지기(知己) 자국의 전력을 제대로 알면 100번 싸워도 승리한다는 말이다. 손자병법에서의 지기(知己)를 현대말로 바꿔 표현한 것이 우리나라 ‘국방백서’에서 국방력과 국방정책을 언급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일보

이준희 전 국방대 직무교육원 교수


백서는 원래 영국 정부가 외교상황을 일반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공식 보고서였는데, 그 표지가 백색이었기에 ‘백서’라는 명칭이 붙게 됐다. ‘국방백서’는 국민에게 국방정책을 공개해 안보 공감대 형성과 지원을 확보하고, 국방정책의 투명성으로 군사협력을 증진하며, 완벽한 군사대비태세를 국내외에 천명할 목적으로 발행된다. ‘국방백서’는 외부의 군사위협, 국방목표 및 국방정책 기본방향,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군사정책, 국방예산 등으로 구성된다. ‘국방백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 등 주로 자유주의 국가에서 발행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국가는 군사 관련 사항은 극비로 비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우리 군 스스로는 ‘국방백서’ 발간을 통해 강한 자신감을 고취, 강한 국방력 건설에 더욱 매진하도록 하고 주변국에는 우리가 최상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음을 과시하고 안보위협세력에는 추호도 우리를 침략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국방백서’를 통해 우리의 국방관련 지기(知己)를 외부적으로 공개, 주변국의 오판을 방지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가운데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종전문구가 삭제된 대신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외부침략과 위협을 북한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며, 이전 백서의 표현은 당시 남북관계 상황이 반영된 것이고 지금은 남북관계가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북한 간에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고 전방 지뢰를 제거하고 감시초소(GP)를 시범적으로 철거하는 등 남북한 간 화해 협력의 무드가 조성됨에 따라 ‘국방백서’에 북한을 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정치가 패트릭 헨리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고 했듯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북한이 적’이라는 개념은 정권에 따라 국방백서에 들어갔다 빠지기를 반복해 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방백서’에 ‘북한이 적’이라는 개념이 빠졌다고 경계태세를 흩뜨려도 되는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은 상존해 있다. 최근 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북한이 작년 비핵화 의지를 밝힌 이후 오히려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MB) 생산을 확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군은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군 본연의 기본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준희 전 국방대 직무교육원 교수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