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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현대판 멍석말이” “초상권 침해”…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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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지검이 불붙인 ‘비공개 소환’

양승태 전 대법원장 ‘포토라인 패싱’

“검찰 조사 거부 아닌데 비난 과도”

피의자 유죄 심증 … 명예 회복 불가

“공론화로 수사 투명해진다” 반론도

중앙일보

지난 1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석에 앞서 기자들이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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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일,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인 사찰 혐의로 영장심사를 받으러 가기 전 포토라인 앞에 섰다. 양손에는 검은색 천으로 덮인 수갑을 찬 채였다. 그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자 기자가 “혹시 부끄럽단 뜻이냐”고 물었다. 죄를 인정한 게 아니냐는 추궁의 의미였다. 이 전 사령관은 “아니다”고 했다.

그날 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해 이 전 사령관은 풀려났지만, 그는 나흘 뒤 오피스텔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그의 지인은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한 장군의 인격을 살해한 것”이라고 했다.

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건 ‘폭력’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언론과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15일 대한변협(회장 김현)과 법조언론인클럽(회장 박재현)은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공동 토론회를 열었다. 대검찰청이 이 토론회를 후원했다.

최근 법조계의 포토라인 논쟁에 불을 지핀 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그는 지난 11일 검찰에 출석하며 검찰청 현관 앞에 마련된 포토라인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지나쳐 ‘패싱’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검찰 조사를 거부한 것도 아니고 포토라인을 지나친 게 비난까지 받을 일인가”는 반론도 나왔다. 수도권 지검의 한 검사는 “피의자에게 소명할 기회를 준다고 하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혐의를 전국민에 알리라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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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변협과 법조언론인클럽은 15일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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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연 대한변협 공보이사는 “피의자가 포토라인에서 질문세례를 받는 순간 지켜보는 국민들의 상당수는 그 피의자가 유죄라는 심증을 가지게 된다”며 “나중에 반론보도가 이뤄져도 이미 현저하게 훼손된 피의자의 명예를 완전히 회복하는 건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문무일 검찰총장도 과거 ‘포토라인 취재는 초상권 침해’라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애초에 피의자를 공개적으로 소환해 망신을 준 건 검찰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영욱 카이스트 연구교수는 “검찰이 언론에 장소제공을 해주며 포토라인을 어느 정도 묵인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최근 “포토라인에 서고 안 서고를 검찰이 자의적으로 선별해 결정하는데 누가, 어떤 법령이 검찰에 그 권한을 부여했나”며 “검찰이 국민의 알 권리를 구실로 현대판 멍석말이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검찰 측으로 나온 김후곤 대검 공판송무부장(검사장)은 “제가 만난 한 중견 법조기자는 검찰이 수사 협조 여부에 따라서 소환 일정을 멋대로 알리거나 비공개하는 게 문제라고 했고, 포토라인에서 마사지를 받고 들어오면 진술과 태도가 달라진다고 말한 관계자도 있었다고 한다”고 자료집을 통해 밝히면서도 “그렇다고 검찰이 일괄적으로 소환 일정을 비공개해버리면 언론에서 양해를 해주겠는가”고 반문했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피의자의 포토라인 동의 의사를 물은 다음에 동의여부를 기자단에 알리고, 조율이 안되면 검찰이 소환일정을 바꾸는 방안도 있다”고 제안했다.

포토라인이 권력층에 대한 수사를 공론화함으로써 투명한 수사를 유도한다는 반박도 있다. 안형준 방송기자협회장은 “검찰에 소환된 재벌총수가 지하 주차장의 비밀 승강기로 조사실로 올라가거나, 비리를 저지른 전직 대통령이 검사들을 자택에 불러 조사받는다면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도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한 번의 사건사고로 국민의 알권리를 담보해온 소중한 제도와 관행을 바꿀 순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최근 전주지검은 윤웅걸 검사장 취임 이후 포토라인을 없애고 주요 피의자들을 모두 비공개 소환하는 ‘실험’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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