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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경찰은 왜 신유용 성폭행 피해 사건에 불기소 의견 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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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검찰과 협의해 불기소 의견 제출” 검찰 “그런 적 없다”

검찰 관계자 “신씨 사건은 안희정 전 지사 사건과 똑같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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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유도 코치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고발한 신유용(24)씨는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고통을 겪어야 했다. 사건은 여러 수사기관을 떠돌았고, 경찰과 검찰은 더 많은 입증을 요구했으며, 입증해 줄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성폭력 피해를 증명하는 일은 어려웠다. 신씨가 ㄱ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서울 방배경찰서에 고소한 것은 지난해 3월13일. 신씨는 이날 ㄱ코치가 자신의 아내에게 성폭행 사실을 알리지 말아 달라는 취지로 회유하는 내용이 담긴 통화 녹음과 에스엔에스(SNS) 메시지 등을 고소장과 함께 경찰에 제출했다. 같은달 22일에는 경찰서로 나가 직접 조사를 받았다. 신씨는 경찰 조사에서 기억을 더듬어 ㄱ코치의 방 구조 등을 그려 제출했고 자신의 피해를 상세하게 진술했다.

하지만 사건은 다음달인 4월2일 익산경찰서로 이첩됐다. ㄱ코치의 주소지 근처로 사건이 넘어간 것이다. 사건이 익산경찰서로 넘어간 지난해 5월14일에도 신씨는 ㄱ코치가 2012년 1월 신씨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데려갔던 산부인과 검사 기록을 제출했다. 경찰은 신씨의 진술과 여러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지난해 7월18일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전주지검 군산지청으로 넘겼다. 하지만 군산지청은 보강 수사를 지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처음에 사건이 넘어왔을 때는 (입증을 위한 증거가) 고소인 진술 중심이어서 보강증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경찰에 추가 수사를 지휘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추가 수사 지휘 때 검찰이 참고인 2명에 대해 진술조서를 꼭 받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참고인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씨는 고등학교 시절 ㄱ코치에게 성폭행 피해를 본 뒤 동기와 여자 코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들이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면, 그 사실을 경찰에게 전해주기만 한다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진술을 해주지 않았다. 신씨는 “여자코치는 유도계 관계자를 많이 알고 있고 ㄱ코치와도 잘 아는 사이라는 이유로 진술을 거부했고, 동기는 과거 자신에게 성폭행 사실을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 도와주겠다고 말했지만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고등학교 시절 여자 감독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ㄱ코치가 신씨의 몸무게가 늘었다고 ‘조르기’ 기술을 써 기절시키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장면에 대해서만 경찰에 설명해준다고 해도 경찰이 ㄱ코치와 자신이 연인 관계가 아니었다는 사실과 성폭행 피해를 보고도 왜 진술하지 못하고 공포에 떨었는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에게서도 답은 없었다. 세 명은 모두 아직 유도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수사의 쟁점은 강제성이었다. 이미 ㄱ코치도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ㄱ코치는 수사과정에서 두 사람은 연인 관계라고 주장했다. 신씨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주장이었지만, 그 주장에 힘을 실어 줄 이가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신유용씨 사건은) 안희정 전 지사 사건과 똑같다”며 “(양쪽 다 성) 관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지휘 관계에서 위력이냐, 강제로 했냐, 억지로 했냐, 이게 문제다. 현재는 고소인과 (ㄱ코치가) 여러 가지 상치되는 진술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사는 지지부진해졌다. 지난해 10월 경찰은 결국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처음 검찰에 사건을 넘겼을 때와 의견이 달라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검찰과 경찰의 해명은 갈린다. 경찰 관계자는 “참고인 진술을 못 받았는데 불기소 의견으로 가야 할 지 검찰과 협의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말은 달랐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송치하라고 한 적 없다. 경찰이 무혐의로 사건을 송치하겠다고 해서 일단 사건을 넘기라고 한 뒤 자료를 받아 본격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그런데 무혐의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 피해자 조사를 다시 하기로 했다. 그래서 피해자 조사를 (피해자 주거지 근처인) 서울중앙지검에 촉탁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행히 수사가 무혐의로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다만 피해자 조사가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간 지 2달 넘게 지나도록 신씨는 아직 검찰청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했다. 신씨의 고통은 하루하루 연장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을 맡은 경험이 있는 김지미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이라는 게 둘만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범행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 사례도 별로 없다. 그래서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 당시 정황만으로 기소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이처럼 피해자 진술이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을 녹화한다. 단순히 조서에 남는 활자만이 아니라 진술 태도도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신씨 사건의 경우) 체육계라는 폐쇄적인 구조가 참고인 진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참고인 조사에 집중하는 것보다 피의자 진술의 신빙성과 일관성을 주요하게 고려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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