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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체육계 만연한 성폭력…스포츠인권센터는 뒷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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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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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면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성폭력 문제가 다시 불거진 가운데 피해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인권센터가 그간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9일 급하게 내놓은 성폭력 근절 대책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란 비판이 나온다.

대한체육회는 심 선수의 성폭행 피해 사실이 알려진 지난 8일 '2018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 자료를 발표하며 "스포츠 현장의 성폭력은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자료에는 "전체 '일반 선수' 중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2016년 3%에서 지난해 2.7%로 2년 사이 0.3%포인트 감소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매일경제신문이 추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국가대표' 선수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경험 비율은 2016년 1.5%에서 지난해 1.7%로 오히려 0.2%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발표 자료에 전혀 담기지 않았다.

대한체육회가 불리한 내용은 쏙 빼놓고 성폭력 경험 비율이 줄어든 일반 선수 대상 통계만 전면 제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한체육회 측은 "일반 선수 실태조사는 2016년, 2018년 모두 타 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긴 것"이라며 "반면 국가대표 실태조사는 2016년은 자체 조사, 2018년은 연구용역 조사 결과라 비교 발표하기엔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게다가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의 지난해 성폭력 피해 신고건수는 2016년에 비해 늘기도 했다. 2016년 2건이었던 성폭력 피해 신고건수는 지난해 6건으로 많아졌다. 최근 5년간 접수된 상담 총 113건 중 27건이 성폭력 관련 신고 상담이기도 했다. 실제 성폭력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포츠인권센터가 대한체육회 산하여서 선수들이 피해자 보호가 미흡할 것을 염려해 신고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스포츠 업계 관계자는 "스포츠인권센터 관리직으로 보통 대한체육회 임원급이 온다"며 "선수 입장에선 신고했다가 괜히 소문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냐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예 대한체육회 차원에서 진행하는 실태조사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송강영 동서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체육계가 폐쇄적이고 좁다 보니 피해자 입장에선 파장이 두려워 제대로 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체육계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기구가 피해자 상담과 보호를 전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가 아닌 독립기구에서 관련 문제를 다루고 센터 전문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문화체육관광부나 대한체육협회 관련 임직원들 중 상급자들은 다 서로 아는 사이"라며 "가해자가 제명되기 전에 사퇴하고 나중에 논란이 가라앉으면 다시 업계로 돌아오는 것도 지금까지 선수가 신고에 적극적이기 어려웠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9일 "향후 체육 분야 비리 대응 전담기구인 '스포츠윤리센터(가칭)'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법 개정이 필요해 실제 설치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체육계 성폭행 및 폭행 근절을 위한 '심석희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네티즌 사이에선 피해자인 심석희 선수 이름을 넣는 대신 '조재범법'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그나마 앞으로는 성폭력 가해자의 복귀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코치의 성폭행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문체부는 이날 영구제명 대상이 되는 성폭력의 범위를 성폭행뿐만 아니라 성추행까지 넓히겠다고 급히 밝혔다. 성폭력 관련 징계자의 국내외 체육 관련 단체 종사도 막을 계획이다. 문체부는 체육단체 간 성폭력 징계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가올림픽위원회(NOCs) 등과 협조체계를 만들어 해외 취업도 차단하겠다고 설명했다. 문체부 스포츠비리신고센터 내 '체육분야 성폭력 전담팀'도 신설하기로 했다. 한편 경찰은 심 선수의 성폭행 피해 고소 사건과 관련해 조만간 가해자로 지목된 조 전 코치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심 선수가 밝힌 수차례의 성폭행 피해와 조 전 코치가 받는 폭행 혐의의 연관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9일 밝혔다.

실제 심 선수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 측은 "지난해 12월 14일 심석희 선수와 면담을 진행한 결과 2014년께부터 조씨가 무차별적 폭행과 폭언, 협박 등을 수단으로 성폭행 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질러왔다는 진술을 듣게 됐다"면서 폭행과 성폭행 혐의의 연관성을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조 전 코치 측 변호인과 날짜를 조율해 조만간 피의자 조사를 할 계획이다.

지난달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조재범 전 코치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글은 9일 오후 10시께 청와대가 답변해야 하는 최소 기준인 20만명 동의를 넘어섰다.

[이희수 기자 / 신혜림 기자 / 수원 =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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